[싸우는여자들기록팀]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믿어요 -1
2023/09/05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믿어요
: 포항 달팽이책방 미현의 이야기
글쓴이 : 히니
노동조합 활동가로, 여성청년독서모임 운영자로 지냈다. 평생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덜컥 고향 포항에서 수제디저트 카페 겸 독립서점을 열었다. 활동에 있어서 앞으로 더 배울 것 만큼이나 해야 할 일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은 글쓰기라 믿는다.
서울에 경리단길, 경주에 황리단길이 있다면 포항에는 효리단길이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적했던 효자동은 어느새 포항에서 가장 힙한 동네가 됐다. 한참은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는 식당과 특색있고 예쁜 카페는 포항 청년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효리단길 골목 끝, 그러니까 번화한 상권이 끝나는 지점에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달팽이책방이 있다. 9년 전 미현이 찾은 상가 중 가장 임대료가 저렴한 곳이었다.
“원래 이 골목에는 배달전문점이나 폐가밖에 없었어요. 외진 위치이긴 했지만 가진 돈으로 계약할 수 있는 상가가 여기밖에 없더라고요. 지금이야 효리단길이라고 해서 책방 맞은편에도 맛집이 꽤 생겼지만요.”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서울에서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미현이 일한 분야에는 기혼이거나 30대 중반을 넘긴 여성 동료가 없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데도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현은 불안해졌다. 불안감은 압박감으로 변했다. 무언가를 해보려면 더 늦기 전에 당장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미현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건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홍대 씬(홍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디밴드 문화)이 처음 생겼던 시기, 중학생이던 미현은 친구를 설득해 밴드를 만들었지만 정작 악기는 다룰 줄도 몰랐다. 마침 청년들이 극장을 개조해 만든 공연장에서 악기를 가르쳐준다는 정보를 듣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피해 배우러 다녔다. 당시 포항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터라 중학생도 늦은 시간까지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미현은 공연장에 있을 때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
각자의 위치에서 싸워온 (여)성들의 ‘싸움’을 여러 각도에서 담아 세상에 전하고자 모인 프로젝트 팀입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