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노동자의 세계, 지하철이 달리 보인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1/23
대학생 시절 백화점 뒤편에서 일한 적이 있다. 주로 영업시간이 끝나고 셔터를 내린 뒤부터 일이 시작됐다. 들어오는 물건을 백화점 판매 층으로 옮겨놓고, 이따금씩은 점포의 마네킹을 분해하고 조립했다.
 
이전까지 백화점은 물건을 사는 곳이었다. 나는 언제나 손님으로 내 모습을 가정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기껏해야 판매노동자가 생각이 미치는 전부였다.
 
그러나 일을 하고 난 뒤 백화점은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손님 눈에 비치는 공간만큼 비치지 않는 공간 또한 많은, 그곳의 낮을 위해 쉴 틈 없는 밤을 보내는 이들로 가득한 노동의 공간이 됐다.
 
▲ 언더그라운드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노동의 공간

굳이 십 수 년도 더 된 옛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영화 한 편 때문이다. 제10회 부천노동영화제가 소개한 작품 <언더그라운드>가 바로 그 영화다. 영화는 사람들의 시야에 닿지 않는 노동의 세계를 비춘다. 부산 시민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지하철, 그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들조차 볼 일 없는 이들의 세계다. 제목 그대로 땅 밑의 이야기, 그곳에서 노동하는 이들에 대한 영화다. 97분의 다큐멘터리로 지하철을 달리게 하는 지하노동자의 세계를 다룬다.

영화의 시작은 한 고등학교의 일상이다. 부산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아이들이 졸업앨범에 들어갈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투닥이고 농담하는 평범한 일상들, 영화를 보는 누구나 겪어왔을 유쾌하고 즐거운 시절이다. 그러나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다. 공고를 나와 취업현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가 시시각각 닥쳐온다. 특히 기계과 아이들은 취업하는 업체에 따라 향후 전망이며 처우가 천차만별이다. 이들 중 몇은 지하철을 다루는 일터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이내 지하철 노동자들의 모습을 비춘다. 부산공고 졸업생 중 여럿도 몸담고 있을 지하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지하철을 뜯고 닦고 기름칠하고 조이는 데 여념이 없다. 누구는 바퀴를 전담하고, 누구는 지붕을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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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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