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끝난 후, 혼란스러웠던 세계는 미국과 소련 양대 강대국의 경쟁이 시작된 냉전의 시기로 바로 돌입했다. 전쟁이 끝난지 몇 년 안 된 1947년, 미국에서는 최초의 컴퓨터라 불리는 에니악 (ENIAC)이 작동을 시작했다. 이 컴퓨터는 탄도 계산 같은 복잡한 계산을 굉장히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끝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탄도 계산은 포탄의 궤도 계산에만 쓰일 필요는 없었다. 거의 비슷한 계산을 우주 발사체, 즉, 로켓 궤도 계산에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컴퓨터가 군사적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열렸음을 의미했다. 1950년대로 접어들자, 미-소 양국의 냉전 경쟁은 본격적으로 체제 경쟁으로, 특히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에 제격인 우주 개발 경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주로 가기 위해서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로켓의 추력 계산, 안정적인 궤도를 찾기 위한 계산, 회수를 위한 자세 제어, 실제 회수와 유인 우주선 탑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대한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다. 당연히 이러한 계산에는 전자식 컴퓨터가 제격이었다.

에니악이 공개되었을 당시, 소련의 스탈린 정권은 컴퓨터를 미국 자본주의자들의 더러운 도구 정도로 폄하했다. 자동화된 작업은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의 가치를 깎을 것이라고 비판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에니악의 계산 능력까지 파악하지 못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소련 역시 우주 탐사를 위해서는 로켓 기술이 필요함을 절감하였고, 이를 위해 에니악에 버금가는 계산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긴 했다. 스탈린 사후, 1950년대 초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정권을 이어받은 흐루쇼프는 본격적으로 소련의 컴퓨터 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레닌그라드와 리가 시 근교에 전자계산기 제작 공장을 세웠으며, 라디오기술연구부 (Ministry of Radio Technology)라는 부서를 신설하여 1955년에는 민스크 시스템과 우랄 시스템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