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격이 지탄받아야 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트럼프는 지탄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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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바이든이 폭력을 규탄했다

7월 15일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는 이 제목을 톱으로 올렸다. 첫눈에 이 편집은 꽤 당황스럽다. ‘아니 총은 트럼프가 맞았는데 톱은 바이든을 올린다고? 장난해?’

<뉴욕타임스>의 민주당 편향이 종종 눈에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 편집은 보기만큼 간단한 편향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다.

7월 15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화면

1.

쉬운 질문으로 출발해 보자.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잡는 수단으로 폭력은 허용될 수 있는가? 직접 폭력을 쓰거나, 지지자의 폭력을 선동하는 정치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당연히 안 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자유롭고 공정한 절차로 확인된 다수의 지배’다. 폭력은 이 원리를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두 가지 독 중 하나다. 폭력은 다수의 의사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확인하는 걸 방해한다. 나머지 하나의 독은 선거 결과 부정이다. 자유롭고 공정하게 확인된 다수가 집권할 자격을 부정한다.

예일대의 전설적인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이 ‘두 가지 기본 원칙’(선거 결과를 존중할 것, 폭력을 거부할 것)을 강조했다. 이걸 어기는 정치인은 민주주의 내부의 경쟁자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는 여기에 ‘세 번째 원칙’을 덧붙였다. 두 기본 원칙을 어기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그를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단호히 선언하고 모든 제휴를 끊어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 ‘세 번째 원칙’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극단주의자들이 세를 불릴 때는, 많은 정치인들이 세 번째 원칙에 충실하지 않고 그들을 방관한다. 민주주의는 눈에 띄는 극단주의자보다도 오히려, 이들 ‘조용한 협력자들’이 무너뜨린다. 

2.

평화로운 시기에 린츠의 3원칙은 제3세계의 불안정한 민주국가에 주는 교본처럼 보였다. 이제는 다르다. 이 3원칙은 어느 나라보다도 급박하게 미국 민주주의를 향해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하버드대 정치학자다. 둘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함께 써서 미국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한다. 두 책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린츠의 정의를 따라, 도널드 트럼프를 ‘좀 별난 경쟁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으로 단호하게 규정한다.

트럼프는 린츠의 첫 두 원칙을 놀라울 정도로 안 지켰으니, 그는 심지어 선거에 이기고도 개표 결과를 부정하는, 민주주의 역사에 전무후무할 사례를 남겼다. 2016년 대선에서 그는 선거인단 제도 덕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일반 투표(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에 뒤졌다. 이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승자’ 트럼프는 “불법으로 투표한 수백만명의 표를 제외하면 나는 (일반 투표에서도) 이겼다”라고 주장했다.

2020년 선거가 패배로 기울던 선거 당일 밤 트럼프는 그 유명한 ‘사기 선언’을 내놨다. “솔직히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이 선거는 우리나라에 대한 거대한 사기다.”

그는 말로만 허세를 부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고,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의 주지사와 선거 관리자를 압박해서 개표 결과를 바꾸려는 시도를 정말로 했다. 트럼프는 조지아주 국무장관 브래드 레펜스버거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자 보세요, 나는 11,780표를 찾아내길 원해요. 왜냐 하면, 우리가 조지아에서 이겼잖아요.” 트럼프는 조지아에서 바이든에게 11,779표를 졌다. 트럼프는 “그런 표는 없다”고 답한 레펜스버거를 협박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에게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저런 시도가 다 실패하자 마지막에는 펜스 부통령을 압박해서 바이든이 승리한 주의 선거인단 투표 집계를 거부하려는 작전도 짰다. 이것도 실패했다. 트럼프는 패배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평화로운 권력 이양에 협조하지도 않았다. 미국 밖 사람들이 선거 결과만 확인하고 관심을 거둬들인 바로 그 기간 동안에, 미국 민주주의는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위기 국면에 진입하고 있었다.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트럼프는 폭력을 동원했다. 2021년 1월 6일은 일반 투표로 선출된 선거인단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모여 대통령 선출 투표를 하는 날이었다. 원래는 이미 결정된 바이든 승리를 단순히 확인하는 요식행위다. 그러나 이 날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미국 정치에 중요한 날로 떠올랐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점거 폭동 @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폭력 점거하는 헌정사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날 아침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했고, 폭동 진압을 위한 주방위군 파견 승인을 세 시간동안 질질 끌었고, 폭동이 진압된 후에는 “오늘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이 폭동을 비난한 적이 없고, 오히려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이라고 불렀다.  

트럼프는 마치 린츠의 사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민주주의의 적’의 전형적 행동을 모두 했다. 그는 선거 결과를 부정했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했고, 폭동 후에도 이를 찬양했다. 

3.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총격을 당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포함해 대표적인 트럼프의 정적들이 “폭력 반대” 메시지를 냈다. 린츠의 세 번째 원칙, 정치에 폭력을 수단으로 가져오는 모든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할 것. 이들은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린츠의 세 번째 원칙은 지금 이 순간에는 트럼프를 보호하는 게 옳다.

그러나 동시에, 트럼프라는 인물은 지독한 딜레마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원칙의 반대편에 서 있다. 정치에 폭력을 수단으로 가져오는 바로 그 일을 한 당사자다. 린츠의 원칙을 따른다면 ‘민주주의의 적’으로 가장 먼저 배척해야 할 바로 그 정치인이다.

이제 <뉴욕타임스>의 ‘편향적’인 배치를 다시 생각해 보자.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할 책임을 진다. 언론은 균형과 객관의 의무를 지지만, ‘민주주의의 적’에게는 그래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 '체제 내부의 좀 별난 정치인'인가? 아니면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가?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분명히 후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별종의 기행'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제동을 건다. 그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헝가리는 이미 ‘트럼프 스타일’의 권위주의 지도자 빅토르 오르반이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 시키고 사실상 독재 단계로 진입했다. 그건 헝가리고 이건 미국이니까 비교할 수 없다? 그럴 리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힘에 맞서 미국만 예외로 지켜 주는 신비한 법칙 같은 건 없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꽤 설득력 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언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뉴욕타임스>가 톱으로 올린 대국민 담화에서 바이든은 이런 말을 했다. “1월 6일 국회의사당 공격, 낸시 펠로시(민주당 소속 하원의장) 남편에 대한 폭력, 미시간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납치 음모 등 정치적 폭력의 신전에 이번 총격이 이어져 있습니다.”

바이든이 아무리 인지 능력에 의심을 받는다 해도, 지금은 그가 옳다. 이 총격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적 폭력의 한 종류이고, 이 총격이 지탄받아야 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트럼프는 지탄받아야 한다. 이것은 정파적 해석을 넘어서는 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원리다. <뉴욕타임스>는, 엄청나게 편향적으로 보이지만, 따져 보면 체제의 중심을 잡는 편집을 했다. 그 의도였든 아니든 간에. 

어쨌거나 도널드 트럼프는 역사에 남을 리더십 넘쳐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얻었고, 이 사진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그 자리에 더 가까이 옮겨다 놓기는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미국의 재선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첫 번째 임기에 ‘체제 내 엘리트’를 지나치게 많이 기용해서 실패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다. 그의 두 번째 임기는 훨씬 더 ‘체제 밖’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얼굴을 스쳐간 총격 직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치켜드는 트럼프 @연합뉴스
이것은 또다른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트럼프는 도대체 어떻게 체제를 때려 부수겠다고 굴면서도 계속 이기는가? 헝가리는 이미 그런 지도자가 이겼다. 그러나 그건 헝가리고, 우리는 미국이 그런 후퇴의 본진이 될 거라고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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