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는 아직이에요> 우리는 언제쯤 안녕 할 수 있을까
나의 할머니는 어느 요양 병원에 갇혀있다. 엄마와 아빠는 ‘모셔 둔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우리 모두 할머니를 버려두고 왔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크다. 할머니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랬고, 할머니가 스스로를 인지하는 방식이 그랬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를 만나고 온 날이면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늘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상과 현실, 그 메울 수 없는 공백 사이에서 나는 아니 우리 가족 모두는 어렴풋하게 어쩌면 영영 우리가 바라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능한 할머니를 자주 뵙기를 바라는 마음과 달리 올 해 들어선 할머니의 얼굴을 마주 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면회가 어려워질 무렵. 할머니의 상태 역시 나빠져 갔다. 가족 면회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할머니의 병세 역시 깊었던지라 병원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병원 입구 문 틈 사이로 짧은 5분간의 만남을 허용해주었다.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수척해진 할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세월이 지나간 눈은 더 움푹해졌고 눈 위로 고인 할머니의 눈물이 마치 우주처럼 보였다.
한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이 그토록 깊을 수가 있을까.
짧고도 길었던 5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짧은 몇 마디 대화만을 나눌 수 있었다. 대화라고 하기엔 다소 일방적인 모양새. 할머니의 어두운 귀를 향해 ‘보고 싶었다’는 말만 던지듯 남겨둔 채 발걸음을 돌렸다.
어떤 관계의 단절은 때론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을 남기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동차 창 너머로 사람들과 건물, 나무와 구름이 지나갔다. 차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티비 속 화면이 바뀌듯 지나가는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