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리단길’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14

영화 추격자에 대한 단상

망리단길 인근의 망원시장
망원동을 사랑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감스럽게도 영화 <추격자>에 호의적인 평가를 주고 싶지 않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제작한 이 영화의 살인현장이 망원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유영철이 범죄를 저지른 곳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이며, 영화 촬영지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망원동은 전혀 연관이 없다. 주민들은 영화가 망원동의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항의에 나섰다. 왜 하필 망원동? 나홍진 감독은 “망원동을 서른이 넘어서 처음 들었다. 존재하는데 존재를 모르고 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망원이라는 글자로 연상되는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감독이 망원에서 무엇을 연상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망원동은 한강변 정자인 망원정에서 유래한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에 오르면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중장년층에겐 망원동은 ‘노아의 대홍수’로 기억된다. 1984년 집중호우로 한강이 넘쳐 유수지 수문이 붕괴되고 수천가구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반지하층은 물론 1층까지 물에 차서 자동차들과 강아지가 둥둥 떠다니고, 주민들이 조각배와 튜브를 타고 대피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망원동은 풍납동과 함께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후 침수방지 시설이 갖춰졌지만 비만 오면 망원동은 침수우려지역이라는 오명을 썼다. 그러나 물가가 싼 망원시장과 전월세가 싼 빌라촌이 있어 사람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몇 해 전 보컬그룹 ‘장미여관’의 육중완과 코미디언 박나래는 MBC의 <나 혼자 산다>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망원시장을 누빈 뒤, 망원동은 ‘망리단길’이라는 그럴듯한 젊은이들의 순례길이 되었다.

회사로부터 지근거리에 ‘망리단길’이 있다. 특별한 것도 없는데 특별한 동네로 떠올라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제법 잦은 곳이다. 눈길을 끌만한 연극무대나 음악당 같은 곳도 없고, 극장이나 클럽이 없는데도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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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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