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아에오(8)] 아이실종, 그 날 나는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케이크여왕
케이크여왕 · 평범함을 꿈꾸는 엄마
2024/03/24
절망이라는 것은 밀어내고 떨쳐내도 왜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것인지 내가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잊어버린 척하며 마음을 다독였으나 뜻밖의 사건으로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착한 딸로 살아온 지 27년, 그 뒤 좋은 아내로 살아온 지 10년. 도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부여잡고 버틸 텐데,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나의 숨을 조금씩 조여오다가 드디어 나에게 사회적 사망 선고를 던진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내가 힘겹게 쌓아 올린 경력과 최선을 다해 적어 내려갔던 학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재택근무를 하고 싶은 날이었다. 갑자기 일이 몰아쳤고 게재논문 마감일이 코앞에 다가와서 온 세상의 설탕을 끌어모아 키보드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거실에 우웅~ 하는 진동이 울렸다.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라고 내뱉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를 후벼판다. 느린 첫째 아이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연히 학교 근처를 지나던 친정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전화를 건 것이었다. “너는 씨!” 엄마가 뱉은 첫 번째 문장이었다. 나는 아직 학교에서 받은 연락이 없다고 하니 잃어버린 지 이제 5분이 됐다고 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아이를 찾으러 나서기도 전부터 비난을 받고 있었다. 아이가 잘못하면 항상 화살은 엄마인 나에게로 온다. 너무 흔한 일이라서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언제나 상처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느린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 경위는 단순했다. 학교에서 야외수업으로 근처 공원에 갔고 곤충을 관찰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돋보기를 나눠주는 찰나에 사라졌다고 했다. 같은 반 아이 중 그 누구도 느린 첫째가 사라지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야외수업이 있었던 공원으로 갔다, 평소 첫째가 가보고 싶어 했던 풀숲으로 들어갔다. 풀숲은 길게 학교 정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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