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스토킹 범죄는 단순하지 않다, 베이비 레인디어

백승권
백승권 인증된 계정 · Writer & Copywriter
2024/05/19
Baby Reindeer

하루에 80통 가까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스토킹 전과범이 날 스토킹했다

일방적인 사랑이 제일 위로가 되지 않아?

아주 오래 그 수치심을 삼키고 살다 보면
그게 내 일부가 되는 걸 막기가 힘들다

두 번 이혼하고 슬픔에 잠긴
전 여친의 어머니와 동거하는 건
정말 특이한 생활이었다

저 사람 의견을 신경 쓰는 내가 싫네요

언젠가 내 삶이 어딘가로
이어질지 모른단 희망이 그리웠다

이성애 중심 사고로 똘똘 뭉친
여성 혐오자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승인을 갈구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가장 어두운 내 불안의 주머니를 환하게 밝혔다

마사는 내가 비춰지고 싶은 모습으로 나를 봤다

나의 일부가 그녀를 그리워한 걸까?

내 스토커는 노련한 프로였다

그 여자는 네 불쾌한 억압을
한 인간에 담아낸 집합체야

전 정말로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관심받고 싶은
어리석은 욕구를 채우려고

자기혐오 전 그걸 사랑해요
그거에 중독됐어요

난 그 여자가 불쌍했다
그게 처음 든 감정이다


차라리 태어난 게 죄고 살아가는 게 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단순하게 여기라는 조언은 복잡하게 여겼을 때 따라오는 여러 번거로움과 부정적인 여파를 회피하기 위한 회피형 생략을 강권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순간만 인지하고 감각하며 살아간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때 그건 삶이 아니겠지. 고장 난 전구처럼 깜빡거리기만 하는 존재일 뿐. 스토킹 범죄를 소재로 한 베이비 레인디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치밀한 범죄계획과 괴로운 피해사실로 단순 대비하지 않는다. 스토킹이 불러오는 폭력적이고 광범위한 폐해를 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또 다른 물리적 정서적 폭력과 이로 인한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 번뿐인 삶에서 상실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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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writer. Author. 『저항 금기 해방-여성영화에 대하여』, 『너의 시체라도 발견했으면 좋겠어』, 『도로시 사전』, 『광고회사를 떠나며』, 『저녁이 없는 삶』 등을 썼다.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sk02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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