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전기모기채를 획득하셨습니다" - 인간과 해충 사이의 전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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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5/23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불량인 채로 수입된 중국산 저가 전기모기채들이 통관 과정에서 압수된 장면(중앙일보)

"인간, 당신은 전기모기채를 획득하셨습니다"

인간은 이제 전기모개채를 들고 모기에게 먼저 다가간다. 전기모기채는 건전지에서 나오는 전류만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화학적 분자구조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그 어떤 살충제보다 확실하게 모기를 격멸한다. 그간 모기를 잡기위해 이루어졌던 수많은 화학적 실험이 무색하다. 모던하고 팬시(fancy)한 문명의 이기를 한 손에 쥔 채, 버튼을 지그시 누르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기에게 미끄러지듯 다가가 가만히 갖다 대고 기다리면, 타닥하는 짧은 파열음과 함께 모기는 새까맣게 타버린다.

롤랑 바르트는 우아함이 목적으로 가는 우회적인 길이면, 숭고함은 존재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전기모기채는 단순명료한 구조를 가진다.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에 전기가 통하도록 만든다. 전기모기채의 숭고함은 모기에게도 인간에게도 통한다. 다만 인간은 그보다 조금 클 뿐이다. 모기 뿐만아니라 인간 역시 압도한다. 전기모기채의 범용성과 살충제의 범용성은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다.

전기모기채는 쉽게 ‘사람에게도’ 쓰인다. ‘전기파리채’ 혹은 ‘전기모기채’를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하면, 고문도구, 장난도구, 협박도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1] 그 누구도 살충제로 해충을 잡는 것 외에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살충제의 사용자는 ‘해충 집단에게 공간을 침범당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해충도, 인간도 살충제에 의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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