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 ‘우리’라는 착각, ‘우리’라는 연결
2023/03/08
나는 여성이고, 동양인이고, 책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또,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이따금씩 훌-쩍, 내가 밟고 있는 땅에 변화를 주면 다양한 경유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동양인 여성의 외모를 가진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서 그 곳에 사는 이름도 모를 ‘한 동양인 여성’에 대해 생각하느라 몽상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나는 영어라는 미디어로 다른 여성과 대화하는 시간을 즐긴다. 이 대화는 개개인의 영어 실력과 무관한 시간이다. 오직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으면 우리의 시간은 (또) 훌-쩍 시공간을 거스르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동양인 여성인 내가 대화했던 또 다른 동양인 여성 세 명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로 연결되었다가 이따금씩 흩어졌다.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 밤마다 짧게 노크를 하며 “캔 아이 컴 인?(Can I come in?)” 하고 묻던 일본인 룸메이트 유키(Yuki; 가명)가 맥주 두 캔을 들고 내 방에 들어오면 우리는 번역기-토크가 시작된다. 헤어졌던 애인에 대한 이야기, 새로 만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한국과 일본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의 이야기는 매번 재미의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진해졌다. 번역기는 정말 수단일 뿐이었다. 가끔 나는 유키가 쓰는 언어가 번역기를 거쳤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들렸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동양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국가라는 것이 자주 느껴졌을 만큼 다른 경험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기 위해 지향하는 외적 모습도 달랐고, 가장 분노하는 부분들도 달랐다. 유키는 할머니 댁에 가면 남자 친척의 세 발자국 뒤에서 걸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번 한 발자국을 더 가서 할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전에 사귄 애인은 유키가 피어싱을 하자 ‘창녀’같아서 싫다고 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