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의 재창조, 동아시아 르네상스
2023/07/21
임채원(국회의장 자문관, 에딘버러대학교 방문학자)
한국이 5천년 역사에서 인류 문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본 적이 있을까?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한류가 미술,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문명 연구 등 동아시아 르네상스로 진화하여 새로운 시대의 세계정신(Weltgeist)을 담아내서 세계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세계 최초라는 금속활자, 우리만의 글자인 한글 등 단편적인 한 가지 분야가 아니라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개막은 21세기 지구적 문제에 대한 세계정신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었다. 미국과 중국의 문명 충돌은 지구적인 갈등과 긴장을 조성하고 있지만, 그 완충지대에 있는 한국에 소프트 파워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문명을 넘어 창조적 문명화해와 세계정신으로 인류 문명에 기여할 길이 열렸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독일 예나에서 가난한 철학자 헤겔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나폴레옹을 보고 ‘세계정신(Weltgeist)’을 만났다고 흥분했다. 어두운 중세와 절대주의의 왜곡된 정치를 뚫고 자유와 이성의 정신을 가진 프랑스 혁명에서 그는 새로운 시대인 근대의 세계정신을 목격하게 되었다. 1492년 지리상의 발견과 1494년 피렌체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근대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비로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적인 세계정신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와 근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시작된 이래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근대 서구 중심의 시대와 서구적 합리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계정신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이 새로운 시대의 중심에 한류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명의 봄에 동아시아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다.
동아시아 르네상스는 1842년 아편전쟁과 난징조약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긴 문명의 겨울을 지나 문명의 봄을 맞고 있다. 3천여명에 불과한 영국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