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끝난 노스텔지어, 90년대 학폭

시랑
시랑 · 요지경에서 근무
2023/09/04
사실 따지고 보면 저 때는 물리적인 폭력이 없긴 했다. 두려움이라는 폭력이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어떤 긍정의 한모서리를 쥐고 있는 건 그때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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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기억되는 두 친구, P와 J

중학교 때, 좀 놀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좀 놀던 친구들과 잘 못 노는 친구들 사이를 왔다 갔다 기웃기웃했다. 
좀 노는 친구들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으스대던 모습도 나쁘지 않았고, 
잘 못 노는 친구들의 지질함이나 순진함도 좋았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지금 키는 그때와 비슷하다. 
좀 노는 아이들은 체구가 큰 편이다.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말썽도 많이 피우던 학생이었고, 
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전학 왔다. 
옆으로 그윽하게 벌어진 고요한 눈이 게이샤 같은 인상적인 아이였다. 
이름은 P. 그녀는 전학 첫날 얌전하고 순한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인사하자마자 홀딱 반해 아이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탄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고가 생겼다. 
P로 인해 교실 내의 어떤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교실에서는 정년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생님들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졸린 수업을 했다. 
열정도 욕심도 없이 목표 진도를 끝낸 선생님들은 
입을 다물라 이야기하고 자습을 시키곤 했다. 

좀 노는 친구들은 자습 시간에 서로 후까시 잡기에 바빴다. 
좀 놀던 친구들은 일일찻집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나 
빈 집에 친구들과 모여 아는 오빠들과 본드를 불었던 
이야기를 저들끼리 했다. 
당시 키가 큰 편인 나는 뒷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듣게 됐다. 
당시의 나는 대학교에 다니던 언니의 옷을 훔쳐입고 다녔다. 
응답하라의 덕선이 처럼 말이다. 
어른 옷을 입는 내가 괜찮아보였는지 한 선배가 X 동생 하라며 
일일찻집 쿠폰을 건냈다.

잘 놀고 옷도 잘 입는 동생을 갖고 싶었던 짱 언니의 바램은, 
아쉽지만 거기서 끝났다. 
왠지 광대놀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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