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어쩌면 당연한 일...
저도 1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 시골에 있다가 수도권으로 올라왔으니 더 공감이 되는데...
진짜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지방에 지금 뭐가 남아있죠?
관공서 빼곤 노인과 낡은 폐가, 죽어가는 상권 뿐인데
문화생활이나 편의시설은 둘째 치더라도
지방은 이미 저같은 중증질환자에게는 말 그대로 저승문이에요.
저는 당시 급성 뇌졸중으로 머리에 뇌척수액이 가득차서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고 뇌가 찌부러지고 있었지만
당시 제가 입원했던 (나름 그 지역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저에게 주는 조치는 구토억제제 뿐이었어요.
4일이나 일반 병실에서 방치를 한 후에야 전원을 시켜준 것도 그렇지만
CT나 MRI 판독도 제대로 못해서 제가 뇌졸중이라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보험청구를 위해 진단서를 떼러 갔더니 제 병명이 '천식에 의한 구토'더라고요?
언제부터 천식이 구토증상과 수두증, 전신마비, 실신을 동반했죠?
4일이나 지나서야 저는 수술할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답을 받았고
급하게 수도권의 병원으로 가니
응급실 문짝을 지나기도 전에 저는 이미 초응급으로 분류되어 응급실 들어가면서 검사를 하고
바로 응급수술을 받았어요.
그런...
일자리도문제지만 의료시설이워낙에 낙후
마지막에있었던지역은 나이든의사할아버지가
눈이침침해서 유통기한대신봐줬던기억이
있네요
거긴 제 고향보다도 시골인 곳이었답니다... 저는 이 일을 겪기 전만 해도 농업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의 농촌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시골로 시골로 내려갔고 거기서 직장을 가지고 한국 농업을 첨단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시골에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기반을 닦으면 제 다음 세대가, 저의 후배들이 한 명이라도 더 되돌아볼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지금도 한국 농업에는 미련이 많아요. 하고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더는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포기할 수 밖에 없어졌죠. 그리고 더 억울한건, 절 이렇게 만든 데에 제가 살리고자 했던 그 시골의 병원이 일조를 했단 거에요. 저는 아직도 수도권의 병원 응급실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해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에 안 왔던 겁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오다가 죽었을거에요."
고향에서 겪은 일은 아찔했겠다 싶어요. 난 꼼짝 못하는 상황인데 정확한 병명은 파악이 안되고 괜찮다며 퇴원만 시키려 한다면 속된 말로 미칠 노릇이죠. 서울에서는 좀 더 안정감을 찾고 하루하루 괜찮아지시면 좋겠어요.
일자리도문제지만 의료시설이워낙에 낙후
마지막에있었던지역은 나이든의사할아버지가
눈이침침해서 유통기한대신봐줬던기억이
있네요
고향에서 겪은 일은 아찔했겠다 싶어요. 난 꼼짝 못하는 상황인데 정확한 병명은 파악이 안되고 괜찮다며 퇴원만 시키려 한다면 속된 말로 미칠 노릇이죠. 서울에서는 좀 더 안정감을 찾고 하루하루 괜찮아지시면 좋겠어요.
거긴 제 고향보다도 시골인 곳이었답니다... 저는 이 일을 겪기 전만 해도 농업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의 농촌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시골로 시골로 내려갔고 거기서 직장을 가지고 한국 농업을 첨단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시골에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기반을 닦으면 제 다음 세대가, 저의 후배들이 한 명이라도 더 되돌아볼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지금도 한국 농업에는 미련이 많아요. 하고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더는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포기할 수 밖에 없어졌죠. 그리고 더 억울한건, 절 이렇게 만든 데에 제가 살리고자 했던 그 시골의 병원이 일조를 했단 거에요. 저는 아직도 수도권의 병원 응급실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해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에 안 왔던 겁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오다가 죽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