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밤바다 · 경계인
2023/09/14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 당선 이후 가장 먼저 잡힌 일정은 지사 간담회였습니다. 네 개 지사, 두 개 지소, 총 여섯 개의 지역을 두 번에 걸쳐 도는 것이었지요.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며 의견을 듣는 자리. 당연히 부담이 큰 일정이었습니다. 당선자 신분의 첫 일정이라는 것에 당연했겠지만, 지사 조합원들과 면대면으로 만난다는 사실이 더 큰 부담을 안겼습니다.

회사생활 18년 동안 지사를 찾아가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신입사원 때 한 번, 그리고 업무로 인해 방문한 몇 번. 무슨 업무로 갔는지, 언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18년 동안 제 업무는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하는, 그게 다였던 거지요. 이랬던 내가 잘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앞으로 노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하겠다고 이야기해야한다니…. 부담감과 또 다른 막막함이 내 안에 가득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복잡한, 하지만 한 길로 짜여진 감정들을 깨버린 것은 첫 점심 일정에서의 S의 한마디였습니다.

“OO아, 여기는 사무실에 개인 전화번호가 없다.”

무슨 말일까. 개인 전화번호가 없다니. 앞뒤 다 자른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무엇을 다시 물어봐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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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아빠, 노동조합 지부장, 법학박사, 작가. 지은 책으로는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저는 육아휴직 없는 맞벌이 엄마입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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