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뉴스 0] 왜? 아빠는 고딩 아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내려 하나.
2024/04/24
아들에게.
어제 말했던 것처럼 이제 너에게 '아빠의 뉴스레터'를 보내기로 했단다.
그냥 흘리듯 말했지만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 아빠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
이런 생각들 말이야.
1. “여러분!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하는 시대가 조만간 올 겁니다.”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단다.
1994년, 대학교 1학년 <경영전산> 수업 중이었지.
그땐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상용화까진, 꽤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998년 제대 후, 아빠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당구장이 아니라 PC방으로 향하고 있었지.
당구장이나 농구장이 아니라.
당구장이나 농구장이 아니라.
2. 아빠의 첫 이메일 계정은 ‘frommylife@hanmail.net’이었지.
복학 신청 서류엔 전에 없이 ‘이메일 주소’를 적는 난이 등장했어.
1998년 한여름의 학교 도서관 전산실, 쨍쨍거리는 매미소리와 PC들의 낮고 굵은 웅성거림의 불협화음 속에서 한 복학생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첫 물꼬를 텄단다.
* 나중에 한 보험사에서 ‘프로미라이프’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이 긴 메일 계정을 소개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 한 졸업 선배가 아빠의 메일 주소를 보고 “얘 메일 주소 봐, 프.롬.마.이.라.이.프.야!”라며 웃더구나. 어떤 점이 웃겼을까?
3. 아빤 아직도 군대에서 받은 편지들이 들어있는, 꽤 묵직한 상자를 보관하고 있다.
군대에선 A4지를 두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엔 모아놓았던 잡지 사진들로 콜라주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여럿에게 보냈어.
첫 직장인 잡지사에선 오랫동안 막내기자로서 독자 사연 코너에 소개할 손 편지를 1차로 고르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일은 의미가 있었어. 사연을 읽다 때때로 '또록'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언젠가부터 편지 대신 이메...
오랜 시간, 종이와 웹 페이지 위에 있어야 할 콘텐츠의 씨앗을 뿌리는 기획을 해왔습니다. 야근하고 집에 늦게 오는 'B급아빠'였습니다.
이제는 A급아빠를 꿈꾸며 '가족들은 모르는 아빠의 일의 세계',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끄적이고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