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책 읽기]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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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By 강예린



다소 상투적인 “여행은 곧 배움이다.”라는 말을 건축계는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여행 장학금도 있다. 재미 건축가 김태수는 장학 재단을 만들어서 지난 30년간 매년 젊은 건축가 한 명을 뽑아서 세계여행 경비를 지원해 왔다. 근대적인 건축 교육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아시아만의 자구책은 아니다. 미국도 로치 여행 장학금(Rotch Travelling Scholarship), KPF 여행 장학금(Kohn Pedersen Fox Traveling Fellowship) 등 건축 여행 장학금이 꽤나 많다.

여행을 권장하는 것은 건축 디자인이 백지 위에서 일궈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능력은 공간의 경험치에 좌우된다. 어느 실내 건축 수업의 설계 평가에서 학생들 전부가 외벽 재료를 ‘콘크리트 위 페인트’로 표기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저마다 다양한 재료로 내부 공간을 계획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아파트에서 생활했던 환경의 영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안에 축적된 공간 경험의 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축은 다른 디자인처럼 모크업(mock-up, 실물 모형)을 통해서 실제 효과를 확인하며 작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건축가는 건물이 다 지어지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린 도면이 실제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기존 건축 경험에 기대어서만 자신이 그린 도면의 실현된 모습을 유추하고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건축물에 가서 보고, 앉고, 시간을 보내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건축의 언어를 배우고 자기만의 어휘를 만들 수 있다. 건물의 스케일과 비율, 표면의 질감, 그림자, 빛의 깊이와 질감을 몸소 체험하고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 8할 이상의 건축 책이 여행기, 답사기, 주제별 건축 소개, 지역별 건축 소개, 건축가의 작업 소개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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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습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2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습니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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