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개지는 것은 힘이 세다_영화 <파리의 딜릴리> 리뷰
2023/01/03
과학, 산업, 문화예술이 꽃핀 19세기 말, 이른바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카나키에서 밀항해 온 ‘딜릴리’는 인권운동가이자 교육자 ‘루이스 미셸’에게 가르침 받아 누구보다 교양과 지성을 갖춘 예의 바른 소녀다. 그런 딜릴리에게 호기심을 품은 배달부 소년 ‘오렐’은 딜릴리와 함께 파리 전역을 활보하며 우정을 쌓는다. 그즈음 파리 곳곳에선 여아들만 연쇄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딜릴리와 오렐은 피카소, 콜레트, 로댕, 마리 퀴리, 파스퇴르 등 당대 지성인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이 영화를 감독한 미셸 오슬로는 흔히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거장’, ‘작가주의 감독’ 같은 표현들로 수식되곤 한다. 모두 적절한 표현이지만, 감독이 ‘작가주의’ 성향의 ‘거장’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가 빠진 수사다. 저런 상투적인 표현들은 말하자면 결괏값에 가까운데, 그 원인, 좀 더 정확히 말해 본질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미셸 오슬로는 심미주의자다.
심미주의자의 눈과 손
국내에서 미셸 오슬로 감독은 출세작인 <키리쿠와 마녀>나 <프린스 앤 프린세스>로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일종의 그림자극 같은 실루엣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와 속편 격인 <드래곤과 공주>, <밤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듯, 그의 작품은 회화적인 평면성이 특징적이다. 고정된 화면에서 공들여 조형한 배경과 인물을 전체적으로 담아내고(롱 쇼트), 필요에 따라 줌-인해 디테일을 잡아낸다(혹은 정반대로 확대된 화면을 줌-아웃해 전체를 조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신이 한 폭의 그림 혹은 연극 무대 같은 인상을 준다. 감독이 이 같은 화면 구성을 주로 선보이는 까닭은 그의 창작 동인이 회화 작품 같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의 미감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탐닉한 끝에 그것을 작품에 녹여내는 것이 미셸 오슬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