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과자가 부른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4/21
어릴 때부터 과자가 좋았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얘기이긴 한데 세상에는 다양한 식성과 취향이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과자가 너무 달고 짜게 느껴지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릴 때부터 과자를 좋아한 것도 특기사항으로 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인간이 바삭바삭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유전자에 새겨진 취향에 가깝다고 한다. 먼 옛날엔 바삭바삭한 음식이란 곧 신선한 채소나 과일, 혹은 곤충일 경우가 많아서 이런 것들을 잘 먹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유전자가 지금까지 전해진 덕에, 우리도 과자를 먹으면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즐거워진다는 얘기다. 하쿠나마타타.

그렇다면 내가 기적적인 우연으로 바삭한 것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다면 과자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까? 실험은 불가능하지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과자가 보상으로 너무 잘 작동한 탓이다. 뭔가 부모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 과자 사 먹으라고 천 원쯤 받는 경우가 제법 있었고,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까지는 생일 선물로 롯데 과자 종합 선물 세트를 받곤 했으니까, 과자는 곧 기쁨과 행복이라는 등식이 뇌내에 성립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과자 세트를 반가워하던 어린이는 과자와 탄산음료로 파티를 벌이는 학창 시절을 거쳐 대롱 모양 과자로 맥주를 빨아먹는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도 어른 나름이라 여차하면 과자와 맥주를 사다 먹던 20대에 비해 30대부터는 과자도 맥주도 즐길 일이 크게 줄고 말았다. 내장이 지친 탓인지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좋고 그 뒤로는 그리 기쁜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불교의 지옥에서 먹기만하고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는 아귀의 체험판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내장의 안녕과 건강의 수호를 위해 과자라는 번뇌를 모두 끊게 되었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말일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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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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