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가 국룰? ‘외벌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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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 엄마가 일을 하고 아빠가 양육을 전담하는 외벌이 가정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래픽=이내훈 칼럼니스트>

#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5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우리나라가 세계 1등과 꼴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자살률과 출산율이다. 필자는 그 누구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 그럴까? 고도 압축 성장 때문이다.
 
조선 말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서구 열강들이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 일본과 조선에 개항을 강요했고 결국 항구가 열렸고 물밀듯이 신식 문물들이 유입됐다. 무역이 확대됐다. 그러나 조선의 왕과 귀족들은 기득권에 안주할 뿐 세계 정세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조선 밖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탐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재화들에 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값이 저렴했으며 조선의 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서구적 평등 사상은 신분 세습이 여전한 조선 말기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얼마 뒤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고종은 어리석게도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손을 벌렸고,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군까지 진입할 수 있다는 반대 상소를 무시했다. 고종은 애초부터 “서울 병력을 빼는 건 힘드니까 외국 군대 동원해서 막자”는 입장이었다.
 
제국주의적 야욕이 국제적인 트렌드였던 그 당시, 조선에 출병한 청과 일본의 속셈이야 뻔했 다. 청나라는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 이후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는데, 동학란을 계기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시켰다. 이내 벌어진 청일 전쟁(1894~1895년)에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를 완전히 몰아냈으며,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1897년)으로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선포했지만 일본의 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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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는 언론사입니다. 국회를 출입했던 정치부 기자 출신 30대 청년이 2021년 3월 광주로 내려와서 창간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서 겁 없이 언론사를 만들었는데요. 컨텐츠 방향성, 취재 인력, 초기 자금, 수익구조, 사무실 등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좋은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언론인의 자세, 이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까지 버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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