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투병일지] 2. 이게 바로 암 환자의 우울이다 이것들아

문희정
문희정 · 작가. 아이와 글을 부둥키고 삽니다.
2024/04/16

[갑상선암 투병일지]
이게 바로 암 환자의 우울이다 이것들아


24. 1. 25
원래 계획되었던 오늘 일정은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내 상태가 촉각을 다툴 정도로 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아직 엄마한테 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걸 알리지 못했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거짓말에 재능이 없어서 수능 앞두고 마시는 100일 주도 차라리 허락을 해달라 대놓고 얘기했는데 이런 건 처음 빨간 비디오를 보고 끙끙거리던 그날이랑 비슷하달까. 아무튼 찝찝했다.

그러니 오늘은 공식 ‘검색의 날’이다. 빨리 대학병원에서 의견을 듣고 치료 과정에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때 말씀드릴 생각이다. 오늘 목표는 병원과 교수님을 선택해 초진 예약을 잡는 것.
서울에 있는 건너들은 유명한 병원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잘 걸렸다 요놈. 지방 사는 사람들은 아프지도 못해!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 병원을 여기서 가려니 아주 그냥 여행이야 여행! 외래를 다녀야 하니 가까운 데로 가라는데 대체 여기 가까운 데가 어디 있냐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가장한 원망을 퍼부었다.
남편 따라 지방에 내려오기 전 우리 신혼집은 택시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대학병원이 세 곳이나 있었다. 후회한 들 뭐 하나 이제는 내려와 산 시간이 더 긴 걸.

암 병원 선택을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나는 갑상선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의 위치부터 봤다. 강북삼성은 종로에 있으니 진료받고 반나절 그 근처 산책만 다녀도 좋겠네 합격. 강남 세브란스는 시외버스 타고 올라가기는 편한데 역에 내려서 또 셔틀 타야 하네 멀미 파티겠구나 불합격.
중학교 때도 문제집도 표지 디자인 보고 골랐는데 내 독특한 기준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했다. 갑상선 수술만큼이나 긴 여정의 순간순간도 중요하니까. 가능하다면 오가는 날들이 괴롭기보다 조금은 설레었으면 했다. 이런 것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이상한 걸까.


 24. 2. 1
내일은 용인 세브란스 초진 예약 날이라 오늘은 조직검사를 했던 병원에서 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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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기록하던 습관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며 1년에 한 권 책을 만듭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읽거나 쓰며 지냅니다. 저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외 다수. 1인 출판사 문화다방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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