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비영리 프로그램 참가 후기-공감인 마음속산책, N포럼 등

유태하
유태하 · 창작중
2023/09/18


펜데믹에 단체활동이 크게 제한되었던 시기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만날 의욕도 솟지 않았다. 나는 당시 섬유근육통에 시달리는 우울한 몸을 이끌고 원데이 클라스를 이것저것 시도했다. 그 때 나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일단 건강한 몸이 되기>. 직장 스트레스로 원 체중보다 15kg가까이 불어났더니, 평소 운동 부족으로 구부정하게 변해 있던 나의 몸은 구석구석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었다. 무릎이 아프고 숨이 차고, 한 겨울이라 입어야 하는 코트가 버거웠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주머니 한 쪽에는 넣고 다녀야 하는 핸드폰조차 어깨를 한 쪽으로 기울게 하는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럴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그래서 비싼 돈을 주고 타인의 시간을 사는 원데이 클라스를 다닌 거였다. 수업이나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도 장기 결제를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왜냐면 누군가와 친해지게 되면 내면의 이야기를 해야 할까 봐서였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행복한 가정에 사는 척 하는 거였으니까. 물론 들여다 보면 직장 동료들도 이사의 집, 팀장의 집, 대리의 집 등, 각각의 집들이 가지고 있는 우여곡절이 비쳐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과하게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연약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은연중에 나의 삶이 남들에게 새어 나갈까 봐 두렵거나, 보다 정확히는 피곤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불필요한 간섭이나 참견을 방지하고자 무난한 집에 외동딸로 사는 것 처럼 연기하던 직장생활은, 실제의 나와 부대낄 때마다 스파크가 튈 만큼의 마찰을 마음 안에서 불러일으켰다.

"부모님의 외동딸이라 고생 한 번 안 하고 컸겠어."

라는 말이 가장 싫었다. 당시 나는 엄마의 무시무시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어디 가서 외동딸이라고 해.' 엄마는 나를 적정 나이에 결혼시키고 싶어 혈안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내내 거절을 반복해도 남자를 만나라며 권유했다가 거절하면 두고두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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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의 정서적 훈련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트라우마 회복 에세이 <기록토끼>, 첫 글에 게시하는 중입니다. whitepoodlelov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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