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역시 독일"이라는 허구적 역사 | <아우슈비츠의 회계원>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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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1
필자 : 강남규 (『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토론의 즐거움 멤버)

지금은 내려갔지만, 넷플릭스에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사를 요약하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과거청산 재판의 명암을 살피고, 현재의 재판을 둘러싼 환경을 폭로한다. 

아우슈비츠의 회계원. 아마 많이들 들어본 말일 게다. 2015년 즈음에 한창 보도가 된 사건이다. 독일 사정당국에서 94세의 노인 오스카어 그뢰닝을 기소했다. 그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회계원이었다. 알려진 바로, 그는 그곳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며 유대인 수용자들의 물건을 착복하기도 했다. 알려진 바로, 그는 직접적으로 유대인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의 기나긴 삶 속에서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제 살 날보다 죽을 날이 훨씬 더 가까워진 그를 독일 검찰은 기소했다. 그의 기소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너무 늙었다고 살려주는 법이 없었죠."
출처 : AP연합뉴스
이 사건을 한국 언론은 "역시 독일"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 보도를 국민들도 "역시 독일"이라는 취지로 수용했다. 역시 모범적인 과거 청산의 나라, 완전히 속죄한 아름다운 선진국, 독일. 그에 반해 친일파들을 살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요직에 오르게 방치한 나라, 완전히 그들에게 지배당해 온 후진국, 우리나라. 대충 그런 구도로 이 사건은 소비됐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과연 독일의 길은 한국의 길과 얼마나 달랐을까. 그뢰닝의 재판은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매끄럽게 진행됐을까. 과연, 과연?

답부터 밝히자. 독일의 길은 (적어도 빌리 브란트의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길과 유사했다. 나치에 복역한 법관들로 구성된 사법부는 다수의 전범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고, 그들은 곧 사회로 복귀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성립된 것은 가히 '근대 이성의 승리'라 평가할 만하지만,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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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박권일(<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신혜림(씨리얼 PD), 이재훈(한겨레신문사 기자), 장혜영(국회의원), 정주식(전 직썰 편집장)이 모여 만든 토론 모임입니다. 협업으로서의 토론을 지향합니다. 칼럼도 씁니다. 온갖 얘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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