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사탕나무 ·
2023/04/11

[합평]

그 몬스가 프랑켄슈타인 캐릭터인 ‘몬스’였다는 사실에 몬스님의 닉네임의 출처를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왠지 전문적이고 학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했는데 전혀 의외인 ‘두치와 뿌꾸’가 나와 재미있었습니다.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의도하지 않는 ‘치유계’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것을 계기로 이전과 다른 또 다른 몬스님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가끔 여러 가지 이유로 본래의 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닌 경우도 있고요. 

최근 독서모임에 새로운 회원이 한 분 오셨는데 늘 미소를 띠고 조용히 앉아계셔서 처음이니 낯설어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 전문가의 일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몸에 밴 분이더군요.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을 맞추고 경청하는 모습에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그 모습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요. 아마 치유계의 몬스님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윤리가 허락하는 범위 내라면, 우리가 지닌 여러 모습을 전부 인정해 주어도 좋지 않을까.>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나’라는 표현이 너무 멋지고 이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나’를 만나며 인정하고 변화하고 적응하며 점점 더 괜찮은 ‘나’로 변해가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글입니다. 

[얼에모]를 통해 함께 글을 쓰고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몬스님의 매력적인 에세이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 

살구꽃 ·
2023/04/10

[합평]

그동안 ‘몬스’님의 별칭이 눈에 띌 때마다 같이 보이는 코끼리이미지로 막연히 크고 서둘지 않고 묵직한 그런 느낌을 짐작했는데 ‘두치와 뿌구’의 몬스였군요. 시간만 되면 두 애들 머리통 너머로 나도 아주 재미있게 봤던,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래까지 게다가 몬스는 어리숙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하게 하고 넘치는 힘을 갖고 있어서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캐릭터였지요. 몬스의 변명은 그래서 왠지 동심을 자극하고 외롭고 짠했어요.

몬스님의 ‘몬스의 변명’이라니 참 제목도 내용도 참 근사합니다. 마치 화면 속의 몬스가 ‘나’를 심도 있게 드러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읽는 이의 변명까지도 대신하는 것 같아 무척 공감했습니다. 유학하면서 언어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자기표현이 가능해진 다음의 관성, 그리고 많이 듣고 조금 말하며 ‘치유계’가 되었다니 과정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격과 경청의 기본자세를 두루 갖추셨네요. 더구나 새로운 화법도 구사하며 안정을 찾았으니 몬스의 잠재된 힘이 또 어떻게 드러날지 기대하게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정말 남들이 알고 있는 나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란 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편하고 좋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줘도 되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굳이 저도 이제 와서 그건 아니라고 수정하지는 않을 듯합니다.새삼스러운 게 때론 너무 불편하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나를 봐왔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자체의 ‘나’도 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온도와 색채에 상황에 따라 어떤 것들이 섞여질 때 절대적인 거부가 아니라 서로 잘 섞여야 한다는 건 살아오면서 터득한 유연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에 나섰던 내가 그저 존재감도 없던 나가 되기도 하고 중간에서 머릿수만 채우는 애매한 나가 되기도 합니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앞으로도 내가 또 어떻게 ‘나’가 달라질지 저도 살짝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 예감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와 깊이를 더한 몬스님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진영 ·
2023/04/06

[합평]

외국어... 저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해 준게 언어였죠.  불어가 그랬고 뒤늦게 공부한 중국어가 그랬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보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신과 많은 부분 타협하게 된다는 말 무척 공감합니다.
순탄치 않은 길에 결국 조화로움을 택했고 치유계라고 불릴만큼 공감과 배려의 아이콘이 되었고 거기에 술이라는 매체가 한 몫했군요. 그렇지만 많이 들어주고 잘 들어 준다는 건 퍽 훌륭한 대화 방식이고 나 지신의 인격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변화라고 여겨집니다.
어차피 인간이라면 누구나 여러 조각들이 모여 나라는 하나의 완성품이 만들어지는 거겠죠.  상황에 따라 어느 조각을 내 보이느냐가 다를 뿐 그것 역시 나일 것은 분명하니 '윤리가 허락하는 범위 내라면 우리가 지닌 여러 모습들을 모두 인정해 주어도 좋지 않겠냐' 는 말씀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치유계와 몬스 사이.. 그 모든 모습이 몬스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 취하고 싶으면 취하고 버리고 싶은 건 버릴 수 있는 의지력이 있다면  이미 프랑켄슈타인도 아니고 치유계도 아닌 도인의 몬스님만  남겠네요.  ㅎㅎ
바꾸고 싶지않은, 그럴 필요가 없는 몬스님의 모습이 더 많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설령 그 반대의 모습이 보인대도 기꺼이 인정하고 수용할 것입니다. 그 또한 몬스님일테니까요.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글 속에서 자주 만나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빅맥쎄트 ·
2023/04/04

@몬스 

[합평]

꽤 오래전 만화인 두치와 뿌꾸라는 제목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습니다. "한치두치세치네치 뿌꾸 빵" - 하는 흥겨운 노래는 기억이 나는데, 정작 만화의 내용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프랑켄이라는 캐릭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치유계라는, 이미지도 성향도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갖게된 것은 유학이라는 강력한 외부요인으로 인해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20살 정도를 살아오면 그동안 형성된 자아와 이미지라는 것이 있는데, 프랑켄에서 치유계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은
사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보통 변화를 싫어하고 현재에 안주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학습된 기존의 나를 바꾸는 것은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유학이라는 변수는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결국 변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자아'는 따로 존재하지만, 팍팍하고 고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실제의 자아가 아닌 '가공된 자아'로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 생활을 하기 전 어릴 때에는 어느정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졸업을 하고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나 자신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타인과 공동체에 나를 맞출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는 가운데 또다시 어느정도 현실에 적응이 된다면 '관성'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삶이라는 것은 결국 끊임 없이 변하는 환경속에서 최적화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5회동안 얼에모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합평]

제목부터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저번에 제가 슬쩍 제목 지적을 했던지라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셨겠지요;; 하하 결과는 대성공. 일단 '변명'이라는 단어가 흥미로웠어요. 무엇에 대한 변명일까. 궁금증을 안고 시작하는 글은 늘 설렘을 유발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제목에 늘 신경을 쓰는데..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난감하지만요;;(지적할 급이 사실 아니었던..;;)

유학. 정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절차죠. 환경도 언어도 사람도 모두 바뀌고 마는 순간.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알던 '나'가 아니기에. 그 혼란으로 진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언어라는 게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 언어가 장벽으로 다가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나'의 혼란이 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몬스님은 의도치 않게 프랑켄슈타인에서 치유계로 변신을 하시고. 이 부분이 너무 재밌어서 미소 지으면서 읽어 내려갔어요. 개인적으로 제 경우는 나를 바꾸고 싶어 해외로 나갔기에, 해외로 나가서야 나를 돌아보게 되는 글쓴이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치유계냐 프랑켄슈타인이냐, 그 갈림길에서 고뇌를 정말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결국 글의 힘은 사유에서 나오는데 그 사유가 깊다보니 짧은 글인데도 힘있는 통찰을 많이 보여주시더라고요.

자신의 여러가지 모습 중에 일부가 진짜가 아니라 해버리면 나를 부정하게 된다는 부분과, 인간에게는 타인을 특정한 누구로 여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존재한다는 깨달음, 하지만 그 특정함이 되려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런 통찰들을 보면서 무척 흥미롭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만큼 좋은 글은 없는 것 같아요.

조금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마지막 단락이었는데요, 더 유연하고 더 단단한 '나'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이 부분을 실제 사례를 통해 전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글쓴이 자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좀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그러면 더 독자들이 깊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합평이에요. 가장 먼저 함께 해보겠다고 손 들어주시고, 이렇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다섯 개의 작품 써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몬스님만의 에세이를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인간 몬스와 더 가까워진 것도 같고요. 얼에모는 끝나지만 앞으로도 몬스님의 에세이를 종종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합평]

유학이라는 환경의 변화가 몬스 님을 극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언어 쪽을 잘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게 되다보면, 어떻게든 성격을 성향이 바뀌어져 버리게 되니 말입니다.

말을 잘 하는 외향적인 캐릭터가 되셨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읽었는데, 오히려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반전이 있었네요. 그렇다면 원래 캐릭터는 외향적인 성향이었던 걸까요.

여럿이 있을 땐 조용하다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면 이야기를 계속하는 친구가 있다라는 이야기가 참 공감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겠죠. 이럴 땐 이랬다가, 저럴 땐 저랬다가. 그러다가 과연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는 것 같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멋진 글 덕분에 제 사고의 지평도 넓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빅맥쎄트 ·
2023/04/01

@청자몽 
청자몽님 얼에모랑 아무 상관이 없으셨군요. 그런 의미에서 2기 때는 1빠로 지원하는 게 좋으실 것 같아 제안 드려봅니다. 

술과 운동 둘다 친하지 않은데.... ㅋㅋㅋㅋ

@몬스
마지막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서우 ·
2023/04/01

몬스님 "치유계" 저는 너무나 맘에 듭니다.
제가 직관은 발달이 좀 된지라 뵙지는 않았지만 어떤 느낌인지 오는데요, 물론 틀릴수는 있지만 힐러 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을거란 상상을 해봅니다!!

똑순이 ·
2023/04/01

@몬스 님~안녕하세요^^
코끼리를 좋아하시는 몬스님.
몬스님 하면 저는 네트위크 지도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 진짜 멋있는 분이다 생각 했습니다.
 치유계 라는 별명의 설명을 읽으니 아주 좋은 별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몬스 만화를 잘 모릅니다.
한번 검색해 볼께요.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몬스 ·
2023/04/01

@청자몽 그렇군요! 잘 주무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저야말로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콩사탕나무 뿌꾸뿌꾸빵빵 주제곡 맞습니다. 저도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 노래에요ㅎㅎ 나이는 얼에모 멤버중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지만, 사회적으로 굉장히 어리진 않습니다ㅎㅎ
마지막 글이 시원섭섭하네요. 왜기저기 고치다가 올리고 또 고친.. 콩사탕나무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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