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한동훈

이강제
이강제 · 도시계획전문가
2024/01/1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7283254


1992, 한동훈

1.

​한동훈이 부산을 찢었다. 총선을 3개월 앞둔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가 부산 남포동 BIFF 광장에 나타났을 때, 구름처럼 모인 관중이 '한동훈'을 연호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대선출정식이나 진배 없었다. 그가 횟집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상의를 벗자 드러난 '1992'라고 쓰인 티셔츠는 순식간에 온라인에서 주문폭주에 이어 매진사태를 빚었다. 가히 한동훈 광풍이라 할만했다. 그가 서울대 92학번이라는 점에서 그 티를 구입한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1992년은 부산이 배출한 정치인 김영삼이 천신만고 끝에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최초의 문민정부를 수립한 해였으며, 부산의 롯데 프로야구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기도 했다. 19992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박힌 티셔츠를 입은 한동훈을 보는 순간 아마도 많은 부산 시민이 울컥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나도 YS 지지자 중 하나였으며 롯데팬이기도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1992는 잊지 못할 숫자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6년이 지나도록 얻지 못했던 아들을 낳은 해가 그해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해이기도했고, 5년간의 시간강사 끝에 대학 전임교수로 임용이 된 해이기도 했다. 고스톱으로 치면 딱 3점을 채우고 '못먹어도 고'를 불렀던 해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3점을 따는 순간들 중 단 하나도 보여드리지 못한 채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바로 그 이듬해였으니 나 역시 울컥할 수밖에.

한동훈이 어떤 생각으로 그 티를 샀으며, 상의를 벗어 그 티를 노출한 것이 의도적이건 아니건, 사실 여부야 어쨌거나 상관없다. 그는 이미 성공적인 대중정치인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을 만인 앞에 공인 받은 것이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산다. 본인의 부고장만 아...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장편소설 <진주>, 문학사상사, 2019 출간
12
팔로워 6
팔로잉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