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투병일지] 3. 양보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애쓰는 중

문희정
문희정 · 작가. 아이와 글을 부둥키고 삽니다.
2024/04/16

[갑상선암 투병일지] 
양보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애쓰는 중



24. 2. 8.
해마다 나갔던 '제주북페어'는 수술 날짜와 겹쳐서 올해 쉬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은 페어라 사실은 페어는 핑계고 봄날의 제주를 즐기러 발 도장을 찍었었는데 아쉽네.

수술 후 딱 한 달. 그때의 컨디션을 가늠할 수가 없다. 후기를 검색해 보니 퇴원하고 요양병원도 가던데 나도 가야 할까.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쉬자고 마음먹었으면서 초등학생으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하나가 걱정이고, 과연 내가 아이들과 떨어져 일주일을 쉰다 한 들 행복할까 하는 고민도 발목을 잡는다.
미련 떨고 있네.


24. 2. 16
수술을 끝내고 한방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일주일씩 쉬다 오는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 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체력이 떨어져서 병원에서 쉬며 도수 치료도 받고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며 쉬다 온 것이 너무 좋았단다.

나도 좀 그래볼까. 호캉스는 못해도 하캉스라도 해볼까. 아픈 김에 쉬어가라니까 진짜로 푹 쉬어 볼까.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안 났던 벽돌책을 두어 권 갖고 가 침대에 기대앉아 실컷 읽다 올까. 잠시 달콤한 상상을 하며 수술받는 병원 가까이 후기가 좋은 병원을 알아본다. 하지만 예약하지 않을 것이다. 40년간 지켜본 문희정이라는 인간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는 4박 5일이 내가 집을 비울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일 것이다.

첫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동네 엄마에게 내 수술 소식을 듣고 해준 말이 있다.
‘너 없어도 애들 안 굶어. 그리고 좀 굶어도 안 죽어. 너 없다고 애들 어떻게 안 되니까 걱정 하지마.’
나는 그 말이 다 맞다는 걸 알면서도 이 손을 놓지 못한다.


24. 2. 18
'갑상선 유두암 환자'라거나 '갑상선 유두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먼 이야기 같다. 그냥 예전부터 알고 있던 목 안에 작은 결절이 아주 못된 놈이라 곧 떼어낼 거라는 것. 그 약간의 긴장감만 갖고 살고 있을 뿐이지 평소와 똑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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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기록하던 습관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며 1년에 한 권 책을 만듭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읽거나 쓰며 지냅니다. 저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외 다수. 1인 출판사 문화다방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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