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절지류'짓에 대하여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5/18
조선일보의 '버러지'짓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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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의 5월은 참혹했다. 그 해 4월이 저물던 즈음 명지대생 강경대가 백골단에 의해 맞아죽은 뒤 전국의 대학가는 들끓기 시작했다. 강경대 사망 소식 사흘 뒤 전남대학교에서 한 여학생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불길한 예감은 지금도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이거 끝이 아니겠는데.” 친구들에게 보내는 유서가 마음에 걸렸다. “너희 가슴에 불을 품고 싸워야 하리. 적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전선의 맨앞에 나서서 싸워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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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길함의 원천은 ‘내 한 몸 불살라’ 투쟁의 동력으로 쓰겠다는 결의가 결코 특출한 ‘투사’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있었다. 백주대낮에 경찰이 사람을 때려 죽였다. 음습한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격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불덩이가 돼서라도 머뭇거리는 사람들, 분노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그 속내를 헤아렸기에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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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카이브
예감의 불길함과 적중률은 대개 정비례한다. 전국 각지에서 분신이 터져 나왔다. 그때 죽어간 이들의 마음을 십분 헤아리고 지금도 그들에게 추모의 념은 깊을망정 1991년의 봄은 내게 일종의 악몽이었다. 아픈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당시 분신 사태는 정권의 폭압이라는 배경과 아울러 80년대 운동권 문화의 엇나간 절정이었고, ‘열사의 뜻’ 이어받고자 하는 의기(義氣)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열사를 만들어낸 아이러니의 역사였다고 여긴다. 돌아간 이들은 용감하고 의로웠으나 그들은 죽어서는 안될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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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 시국 최고의 독보적인 악당은 단연 조선일보로 기억한다. 조선일보는 모든 보수 언론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으로 악질적이었다. 연이은 죽음들의 뼈대로 프레임을 만들었고, 사실 취재가 아닌 음험한 상상으로 기사를 창조해 냈고,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한 사람들을 조소와 경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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