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돌보고 싶을 수도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를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면회도 외출도 외박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엔 그를 돌볼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이를 과연 돌봄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회피하고 싶었다. 내 시간과 관계를 포기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 한 채 아버지를 돌보러 격주 주말마다, 연휴 때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덕지덕지 붙어 무겁기만 했다. 아프지도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병원에서 그의 곁을 지키는 건 답답한 일이다.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침상 커버를 갈고 새벽엔 목에 걸린 가래를 빼기 위해 썩션을 하는 건 힘든 일이고 고역이기까지 하다.
   
힘든 일이 지나고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를 두고 근처 공원이라도 다녀오곤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병원에, 아버지 곁에 있어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러다 휴대폰으로 sns를 뒤져보기라도 하면 보이는 건 죄다 자랑질뿐. 괜한 시기심과 박탈감에 금세 닫아버린다. 병실에 있는 TV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러다 보면 식사 시간이 다가와 아버지를 깨워 식사할 채비를 갖춘다. 그렇게 마치 돌봄이 마치 죄의 삯이라도 된 듯 어서 간병인이 돌아와 바통 터치하고 해방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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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시인-되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문단에 등단한 적 역시 없다. 대학 졸업 후 개신교 선교단체 간사로 3년 간 일하다 2016년, 목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상시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되자 하던 일을 관두고 격주 주말과 명절 연휴 때마다 병원에 들어가 그를 돌보게 된다(최근 3년간은 Covid-19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인연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1년, 이후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협동조합으로 이직해 커뮤니티 매니저로 3년을 일했다. 2021년, 기술을 배워봐야겠다 싶어 한옥목수 일을 배우고 실제 문화재 복원 및 보수 현장에서 초보 한옥목수로 일을 하다 열악한 근무여건(근로기준법 미준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그만두게 된다. 짧게라도 배운 기술과 일 경험이 아쉬워 비록 목수는 아니지만 2022년엔 수원 화성행궁 복원 현장에서 인턴 공무로 6개월 간 일했다. 2024년 현재는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활동가로 근무하며 프리랜서 작가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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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할 수 있는 돌봄안전망을 만들어 갑니다. 아픈 이를 돌보는 청년들의 자조모임에서 시작해, 돌봄청년들과 돌봄연구자들이 모여 가족, 성별, 세대를 넘어 모두를 위한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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