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멀쩡해, 미친 건 나야!
2023/12/27
길을 걷다 또 눈이 돌아간다. 10000원짜리 니트 가디건이라니? 어머. 이건 사야 해!
옷 끝을 만지작만지작하고 있으니 가게 점원이 한마디 건넨다. "어휴. 뭘 그렇게 고민해요. 만 원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 그렇게 또 내 지갑에서 만 원이 빠져나가고 정신 차리면 검은 봉지가 손에 들려 있다.
맞다. 옷이 싸면 우리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옷을 샀다. 그러면서도 이를 '합리적인 소비'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고민도 하지 않고 집어든 소비, 정말 합리적인가?
그런데 고민도 하지 않고 집어든 소비, 정말 합리적인가?
개그맨 박영진이 라디오스타에 나와 한 말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60% 세일. 80% 세일. 이건 가격의 할인율이 아니다. 내가 살 확률이다.
그러니 어떤 옷에 40%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어 '이건 거저다!'하고 구매했다면 당신은 옷을 구매할 확률 40%에 포함된 것이다. 할인 스티커에는 우리가 살 확률이 그곳에 적혀있는 것일 뿐이다.
‘합리적 소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날 밥 먹듯 쇼핑하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합리적인 소비는커녕 쇼핑에 중독된 좀비 같기도 했다. 옷 안에 숨어 있는 가격표를 뒤집으며 그저 황홀하도록 싼 가격과 빨간색 글자로 ‘SALE’이 라 적힌 스티커가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쿠폰 사용, 포인트 적립, 리뷰 작성 등의 수단을 빠짐없이 동원해 구매가를 집요하게 떨어뜨리는 과정은 분명 중독에 가까웠다. 가격에 숨겨진 비밀과 전략을 알지 못한 채 ‘가격이 싸다’는 사실만 중요했을 뿐 어떻게 그 가격이 나올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그 물건이 정말 내게 필요한지 고민해 본 적도 없는 나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세일 단골 멘트의 진실. 미친 건 나야!
그런데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정말 미친 것도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