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의 일상파괴술④|다양체Ⅱ: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2022/07/25
하지만 문제는 <하나>와 <여럿>의 이원론보다 나을 게 없는 이러한 이원론에 따라 두 유형의 다양체를 (중략) 대립시키는 일이 아니다. 동일한 배치물을 형성하는, 동일한 배치물 속에서 작동하는 다양체들의 다양체만이 있을 뿐이다. 즉 군중 속에 있는 무리와 무리 속에 있는 군중…….
- 질 들뢰즈, 《천 개의 고원》,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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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시청역사 안에선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회로 인해 역사가 혼잡하오니……. 유인물을 나눠 주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광장에 가장 가까운 3번 출구 밑에서부터 사람들은 줄을 지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나도 그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함께 찬송가와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동성애…… 차별 금지법…… 지옥…… 할렐루야!”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프라자 호텔 사거리 한 곳이었던 탓에 병목 현상이 생겼다. 반대 집회의 무리는 그 길목에 대고 구호를 외쳤다. 그 덕에 더운 날씨에도 땀 흘리며 반대 집회에 나온 얼굴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지난 퍼레이드 때보다 반대 집회 쪽에도 젊은 사람들이 아주 많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광장에 있었다. 잔디밭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사람들과 깃발들. 조금 울컥했다. 3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고, 이들에겐 더욱 그랬을 것 같아서이다.
응원의 마음과, ‘그래도 이렇게 나왔으니!’라는 기쁜 마음으로 부스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세심히 살피진 못했지만 정말 많은 팀이 참여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조계종 부스에서 ‘차별없는 세상 우리가 부처님’이라 적힌 연꽃 부채를 받아들고 공연과 연대 발언을 구경했다.
공연과 연대 발언이 끝날 즈음엔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나간 친구가 광장으로 다시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무대 행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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