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연애의 한 종류

박현우
박현우 · 헬조선 늬우스 대장
2023/11/15
그 연애를 시작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는 그때 내가 그 연애를 시작한 이유로 외로움을 든다. 장기화된 외로움, '나는 혼자고, 혼자일 것이다'라는 강한 확신은 서서히 나를 파먹었다. 세상은 회색빛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꿈도 희망도 잃어갔다.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삶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나니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색다른 글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연애 후 이별 뒤에 쓴 글이 연애칼럼이란 형식으로 배출되었듯, 굳은 살이 된 우울도 글로 배출되었다.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 어떤 의사가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조울증의 '조'와 '울'에 해당하는 녀석들은 상당히 강단이 있어서 글로 아무리 놈들을 배출하려해도 쉽사리 빠져나가지 않았다. 글로 일부를 배출해도 원소스는 그대로 몸에 남겨져 있어서 또 비슷한 앙금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찰나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얼마 안가서 헤어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 생략하고 하나만 말하자면 그는 내가 '나'로 존재하게 어렵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내가 혼자 시간을 가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그를 혼자 두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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