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님재판이라고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재판

박찬운 · 교수·변호사, 여행가이자 인문서 저자
2024/05/23
나의 독서(1)

 
며칠 동안 퇴근하면 만사 제치고 책을 읽었다. 숭실대 민사소송법 교수 임상혁이 쓴 <나는 선비로서이다>와 <나는 노비로소이다>. 법학자가 조선 중기 노비소송을 분석하면서 당시 법과 사회를 연구한 책이다.

아마 기존 사학자들이 이 책을 본다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사학자들도 역사를 연구하면서 매우 사회적 파장이 큰 소송의 존재를 알았다면 어떻게든 그 의미를 역사로서 기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사실관계와 그 파장 정도를 알리는 것에 국한되지 않을까. 그 소송의 내용을 현대의 법학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 사건의 이해는 한층 깊어질 것이지만 그것은 법학 전문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현대법학으로 무장하고 역사를 추적해 사료를 발견해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역사적 기술의 적격자인데... 그 사람이 누구일까? 과문한 탓에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그런 인물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선비로소이다

법학도이면서 역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 온 임상혁 교수. 그가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판결문 하나를 멋지게 해석했다. 그는 그 사건의 내용과 전개과정을 오늘 날 소송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관련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며, 거기에 당시 사용된 법률(경국대전 등)을 적용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판결의 문제점을 당시의 시점에서 비판한 결과 그 판결은 희대의 오판임을 밝혀냈다. 오랜 기간 갈등해 온 두 집안 간 싸움에 정치가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해 씻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임교수는 그것을 매우 실감나게 밝혀냈다.


조선 중기 문장가 구봉 송익필
, 한 때 이이와 성혼의 절친이었고, 높은 학식으로 말미암아, 관직에 나아가진 않았지만 많은 양반 사대부의 존경을 받은 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엿한 당상관을 지냈고 형제들도 모두 총명했다. 그런 집안의 명망가가 한 소송으로 인해 그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가 노비로 전락했다. 그것도 100년이 넘는 일을 들추어 내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패소함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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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약. 우리나라 인권법을 개척한 인권법 연구가.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등 10여 권의 인문교양서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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