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큰 이야기에 빠져보자

김형찬
2023/05/13
이사를 다니다 보면 아끼던 물건들이 사라지곤 한다. 그런 물건 중에 10년 넘게 방문에 붙여 두었던 사진이 한 장 있다. 한 과학잡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4절지 정도 크기의 종이에 우리 은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은하의 팔들 중에 약간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팔에 작은 검은 점이 찍혀있고, 캡션으로 ‘we are here' 라고 적혀있었다. 그 아주 작은 점이 가리키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였다. 
   
아침에 일어나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잠시 나의 좌표를 상상하곤 했다. 정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까지 생각을 확장하고,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을 머릿속에 떠 올리면서, 지금 내가 어디있는지를 생각해 봤다. 점 안에 나를 밀어 넣고, 빅뱅 이후의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찍어보면, 한없이 아득해졌다. 
   
그 아득함 속에서 의식이 다시 차올라오면, 이 모든 것이 내가 사라지면 나에게는 또 아무런 의미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때론 다시 잠이 든 날도 있었지만, 비몽사몽간에 이런 상상 속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박수 한 번 치며 의식의 흐름을 끊었다.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것은 또 오늘 하루’였다. 
   
『13년이 지났을 때(우주의 역사를 10억분의 일로 줄여서 환산) 우주는 13년을 산 것이고, 지구는 불과 5년도 되지 않은 세월을 산 것이다. 복잡한 다세포 생명체는 약 7개월 동안 존재했고, 호미닌은 약 3일, 인간은 불과 50분정도 존재했다. 농업사회는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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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환자를 돌보면서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현대인의 건강에 대해 고민합니다. 건강의 핵심은 일상생활에 있고, 그 중심에 몸과 정신의 움직임 그리고 음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한의학이란 주제로 지속 가능한 건강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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