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치 못한 가짜 가죽과 신발의 지옥 1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3/20


식물성 가죽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생산 과정에서 동물의 희생이 뒤따르는 경우도 있을 뿐더러 가공 과정에서도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진짜 가죽을 대체할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이 소재는 사과나 버섯, 선인장, 파인애플, 포도 등의 단백질이나 섬유질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광고에 따르면 진짜 가죽보다 친환경적일 뿐더러 가볍고 상처도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광고 내용이고 소재마다 특성이 다를 테니 무조건적으로 좋을 거라고 생각할 순 없지만, 아무튼 환경 문제에 그럭저럭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근래에는 식물성 가죽으로 만든 운동화를 한 켤레 살 뻔했다.

살 뻔하고 사지는 않은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단 첫째로 이미 신발이 많은데 굳이 신발을 더 산다는 게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을 더 사는 게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아무리 친환경적인 물건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것보다는 안 사는 게 낫다.

두 번째 이유는 적당한 가격의 식물성 가죽 신발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비건 가죽이라고 검색하고 괜찮아 보이는 걸 눌러보면 모조리 다 합성 가죽 제품이었다. 동물 가죽을 쓴 게 아니니 절대 비건이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화딱지 나는 일이었다. ‘레자’로 불리던 게 시류를 타고 이름만 친환경적인 척 바꿔달고 나타난 게 아닌가. 검색을 더 잘 하면 식물 가죽 신발도 나오긴 했으나 선뜻 살 가격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식물 가죽 제품 쓰기를 아예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후로도 가죽 재킷이나 부츠, 등산화 따위를 찾아봤다가 설명 저 아래 합성 피혁이라고 쓰인 것을 찾아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얼렁뚱땅 좋은 소재인 양 말장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가방이 제법 저렴하며 멋스러워 설명을 보니 사피아노 비건 레더라고 이미지로 표시되어 있었다. 사피아노는 가죽에 찍은 자글자글한 그물 패턴이라 원료와는 관계가 없다. 그 옆의 텍스트 설명은 Polyvinyl Chloride였다. 분명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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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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