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하고 명쾌하기에 - 자기계발서 열풍이 위험한 이유

오찬호
2023/06/01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이하 세이노)이 몇 달째 베스틀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독특하다. 일단 두껍다. 무려 736쪽이다. 주제가 명확한 자기계발서는 3백 쪽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것도 편집을 억지로 해 분량을 부풀린 경우도 대부분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여백이 많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하지만 세이노는 벽돌책이다. 꼭지가 긴 호흡의 글은 아니지만, 내용의 밀도는 촘촘하다. 

그런데 싸다. 인터넷 판매가가 6380원이고 심지어 전자책은 무료다. 저자가 책으로 돈 벌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목적의 자기계발서는 부지기수다. 어떻게든 책 한 권 있어야지 강연하는데도 인정받고 하니까 자비로 출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1주일이면 작가 된다’면서 코칭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판매량은 거의 없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세일즈포인트를(판매부수가 아님) 기준으로 하면 이런 책들의 점수는 100점 미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세이노는 83만 점이 넘는다(5월 15일 기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나처럼 사회비판 책을 쓰는 작가들은 1만 점만 넘어도 기뻐 죽는다.

마지막으로, 평판이 좋다. 인기 있는 자기계발서의 후기 중에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구매했는데 별로다’, ‘마케팅에 낚였다’라는 평가가 곧잘 있다. 하지만 세이노는 감탄이 이어진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저자는 아는 게 많다. 부자가 되는 다양한 방법과 태도를 경험에 근거하여 제시하고 여기에 인문학을 포장하는 내공까지 보여준다. 그러니 이건 부자‘비법’이 아니라 부자‘철학’이다. 독서의 충만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세이노라는 필명이 주는 궁금증이 더해지니 신비로운 책으로 거듭난다. ‘아니오라고 말하라’는 뜻인 필명은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반골 기질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별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개척 정신 같은 건데 자수성가한 본인의 삶과 겹쳐져 울림이 크다. 

자기계발은 좋다, 그 깨달음을 자신에게만 적용한다면.

책이 인기를 끄는 거야 무슨 문제냐겠만 유독 ‘자기계발’이나 ‘재테크’ 분야의 책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따른다. 이는 책이 지닌 ‘사회성’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소설을 많은 이들이 읽게 된다고 그 사회에 무슨 나쁜 징조가 나타나진 않는다. 있다 한들, 아이가 공부 안 하고 책만 읽고 있다는 푸념 정도일 거다. 하지만 ‘갭투자로 성공하라!’는 주제를 단호하게 전달하는 책이라면 아니다. 비록 누군가에게 부동산 자산증식 비법이 될 순 있지만 그게 정답처럼 퍼져나가면 전세사기 같은 최악의 결과가 등장한다. 자기계발서는 잘못이 없을지언정 그런 ‘기조’가 세상을 지나치게 부유하여 개인을 압박하는 것은 해리포터의 기운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를 읽고 말고는 개인취향이지만 그 ‘열풍’은 의심해야 한다.

자기계발서 맹신자들의 문제점은 이런 주장의 반론에서 단번에 드러난다. 자기계발에 심취하면, 자기계발‘론’을 비판하는 걸 자기계발은 하나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도 ‘노력하는 게 왜 잘못이야’라는 생각들 많이 하실 거다. 노력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시대정신에 딴지를 거는 건, 노력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의 호흡으로 강도조절하며 세상과 마주한다. 하지만 세상은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계발이 부족한 걸’로 쉽게 재단한다. 경제적 격차, 성별 고정관념, 건강문제, 가정의 불화, 지역 불균등 등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는 유의미한 사회적 요소들을 간단히 ‘핑계’로 치부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불평등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다. 

자기계발서는 단호하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단호하게 정리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을 꼭 말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이 정말로 성장한다면 ‘저래서 가난하다’는 사고를 쉽사리 하겠는가. 가난한 사람을 향해 빈정거리는 게 설마 성장이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성장은 남들보다 잘 되는 게 목적이기에 가능하다. 최근에, 강한 멘탈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동기부여 영상을 접했다. 강사는 주변에 보면 축 늘어져있고 당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못 봤다는 말을 기어코 한다. 잘 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또 질문을 던져보자. 정말로 강한 멘탈이라면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을 향해 그리 쉽게 ‘너는 실패할 관상’이라고 평가하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강함’이란 지혜로움과 무관하니, 가능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면 옆을 어찌 보겠는가. 불평등이 단호하고 명쾌하게 개인문제로만 정리될 수 있을까? - 사진은 픽사베이
자기계발의 힘은 독서라는 순수한 행위조차 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둔갑시킨다. 부자들은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등의 말이 많아지더니 독서를 기준으로 사람이 구별된다. 그저 책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정도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라는 과격한 이분법으로 해석된다. 젊을 때 책을 많이 읽으면 중년이 되어 명석한 티가 딱 난다, 반대라면 흐릿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유다. (최근, 나의 경향신문 칼럼은 이를 확장한 글이다)

좀 슬프다. 책이, ‘책 안 읽어서 저 모양이지’라는 문장으로 언급될 수 있다니 야속하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인생이 존재하고 그걸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바로 책 ‘속’에 있는데 말이다. 독서의 효과는, 또 독서하고 싶은 거다. 책을 덮으면, 다른 책을 읽고 싶은 욕심만이 생길 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선 책 읽고 고정관념을 깬 자신이 대견해, 책 안 읽는 자는 어떠어떠하다는 고정관념을 전파한다. 돋보이지 않으면 끝장나는 사회에선 어떻게든 누군가를 솎아내려는 강박도 커진다. 그래서 자기계발 열풍은 결코 좋은 사회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 SRT 메거진 2023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오찬호
오찬호 인증된 계정
작가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사회학을 강의했고,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추적하는 글을 씁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최근작 <민낯들>(2022)까지 열세 권의 단독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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