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지옥2-선중일기] 2. 승선 D-day

최지수
최지수 인증된 계정 · 전세지옥, 선상일기 저자입니다.
2023/12/14
4년 전 ‘신들의 봉우리’라는 히말라야 배경의 만화책을 보고 그 자리에서 히말라야 트래킹 가이드북을 샀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수염을 기르고 히말라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책꽂이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꽂아놓고 그 책을 볼 때마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할 때, 주저하지 않고 히말라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로 예정되어 있던 승선 일자가 12월로 미뤄지며 시간이 생겼다.
원양 상선 승선 전, 나는 히말라야에 가고 싶었다. 
   
역시나 자금 문제로 고민이 많았지만, 선원복지고용센터에서 승선 대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지금까지 고생한, 그리고 앞으로 고생할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네팔 직항 대한항공 왕복 티켓은 130만 원이다. 6박 10일의 여행의 총경비가 130만 원이 들지 않았다. 총 세 번을 경유하는 값싼 중국 항공사 티켓을 예매하였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이동하는 야간버스에서 두 번 밤을 새우고, 한 번은 공항에서 잤다.

힘들었지만, 여행 내내 행복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산군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4년 동안 그 순간을 꿈꾸었으므로 꿈의 문을 열고 들어간 시간이었다.
   
행복을 사는데 굳이 큰돈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히말라야에 있는데 한 신문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승선 D-5
한국 귀국 전날 경유지인 중국 쿤밍 공항에서 노숙을 하며 서면으로 인터뷰 답변을 보냈다.
   
승선 D-4
다음 날 기자님들이 신문 지면에 실릴 내 사진을 찍기 위해 공항에 마중 나왔다.
   
가족과 친구들은 네팔 간 사실을 숨기라고 이야기했다.
책에서 불쌍한 척 다 해놓고 해외여행 가는 건 욕먹을 짓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이해 가지 않았다.
수원 빌라왕은 수사 중에도 골프를 쳤다.
전세사기 피해자인 내가 대체 왜 승선 전 등산 간 사실을 숨겨야 하는 걸까?
공항에서 담담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후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는 나만 반팔이었...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23
팔로워 42
팔로잉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