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멸종은 언제일까?

뉴필로소퍼
뉴필로소퍼 인증된 계정 · 일상을 철학하다
2022/11/24

적막한 자연은 죽은 것이다

삶은 복작거리고 진동하는, 
시끌벅적하고 생기 넘치는 
술집 한복판에 있는 것과 같다.

가끔 영국 남서부에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 근처 농장으로 큰맘 먹고 들어간다. 그곳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흡사 방향제 같은 향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철조망에서 20미터쯤 더 앞으로 걸어가면, 약 8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GPS로 조작하는 수확기계 소리가 가득하다. 머리카락 사이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벌레들도 없다.

이곳에서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은 단 하나, 공포스러운 적막감이다. 이곳은 농장이 아니다. 우리의 먹을거리가 만들어지는, 일종의 영안실이다. 다섯 번째 대멸종은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멕시코에 소행성이 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은 바로 우리, 인간에 의해 시작되었다.
일러스트: 아이다 노보아&카를로스 이건

인류에게 알려진 모든 척추동물 종의 약 절반을 대상으로 계산했을 때, 척추동물 개체군 크기와 종류는 32퍼센트 감소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IUCN Red List에 위기종으로 등재됐던 육상 무척추동물의 42퍼센트와 해상 무척추동물의 25퍼센트는 이제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이러한 수치들은 환경보호단체의 현수막과 보도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내가 받는 충격은 미미하다. 숫자만으로는 상황의 심각성이 쉽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적막하며 유독한 유채밭이 더 큰 경각심을 일으킨다. 농장을 방문한 지 몇 주가 흐르고, 그곳의 적막함이 왜 그토록 나를 불편하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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