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 일기] 6. 저기요, 저도 놀고 싶은데요

신예희
신예희 인증된 계정 · 위인입니다
2024/04/04
“회원님, 크리스마스에 뭐 하셨어요?” 헬스장 트레이너의 질문에 멈칫했다. 아 맞다, 지난 주말이 크리스마스였구나. 하긴 뭘 해, 그냥 집에 있었지. 휴대폰 건강 앱에 따르면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약 320보를 걸었다고 한다. 휴대폰을 소중히 품고서 화장실을 몇 차례 다녀왔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답하니 트레이너의 눈이 이만큼 커졌다. “집에 있었다고요? 크리스마스인데요?”
 
그러니까 이 20대 중반의 청년에게 크리스마스란 일 년 중에서도 손꼽히는 큰 이벤트일 것이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이겠지. 나도 그랬다. 12월 초부터 장소를 고민하고 선물을 고르느라 꽤나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요런 무슨 무슨 이름이 붙은 날엔 150%의 확률로 애인과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신비로운 기억도 생생하네. 
 
하지만 요즘의 나는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기만 해도, 하이고,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버스나 지하철은 미어터질 게 뻔하고, 운전한다 해도 길이 엄청 막힐 거다. 주차 공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날은 춥지, 눈이라도 오면 미끄럽지, 중얼중얼… 그러자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부모님도 그런 날엔 외출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 그렇다네 젊은이…
 
특별한 날을 대하는 방식만 바뀐 것 같진 않다. 어째 삶이 전반적으로 점점 단순해지는 느낌이다. 한때는 물건이든 서비스든 장소든 몽땅 다 궁금했고, 하나도 남김없이 정복하고 싶었다. 시간도 힘도 열정도 많았으니까. 돈은 조금 부족했어도. 뭘 하든 내 마음이 동하는지가 무척 중요했다. 그게 우선순위의 꼭대기에 있었다. 
 
그 시절엔 신발 한 켤레를 고르더라도 눈에 확 꽂히느냐에 목숨을 걸었는데, 요즘은 내 몸이 편한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예쁘고 자시고 간에 족저근막염이 도지는 게 더 문제다. 여행을 계획할 때도 그런데, 가고 싶고 하고 싶고 먹고 싶은 목록이 몇 미터나 되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꽤 단출하다. 어디 보자, 여긴 20대 타깃이겠군. 요 굿즈는 사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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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프리랜서. 글, 그림, 영상, 여행, 전시 작업에 관여합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어쩌다 운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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