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벌할 수 없더라도: 친부모를 고소하기 [눈 위에 발자국]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3/02/18

 어린 시절 이루어진 부친의 추행을 고소하기 위해 여성기관에 전화해 상담을 진행했다. 포털사이트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여성 상담 기관 전화번호의 목록이 정리되어 나온다. 어떤 상담사분이 전화를 받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된 곳은 ‘1366’이었다. 긴급 상담 전화라고 설명되어 있기는 한데, 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법이 개정되며 아동 성폭력의 공소시효가 사라졌지만, 그 이전 사건에 대한 소급적용은 되지 않고 친족 성폭력의 경우 역시 예외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통화한 상담사분은, 친족 성폭력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피해를 겪은 시기가 아동기이기 때문에 고소 성립이 가능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연락해 더 자세한 법률자문을 받은 후 사건을 접수할 것을 권하셨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냐고 하시기에 물었다. 사건 당시 공포에 질려서 기억이 아주 선명하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지 않을지, 그리고 ‘이 정도의 일도 사건화가 될지’를. 상담사분은 내가 겪은 추행이 친부에 의해 아주 어린 나이에 행해졌을 뿐 아니라 그 정도가 객관적으로 가볍지 않으며, 성인들 역시 그런 일을 겪으면 고소를 한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만큼 질이 나쁜 일이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어릴 때 친부에게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성장한 후에도 누군가가 나를 추행하면 내 머릿속은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을 지나 애써 그 사건을 가볍게 해석하고 이유를 부과했다. 예뻐 보이면, 만지고 싶으면 그럴 관계가 전혀 아닌 이성이 내게 갑자기 입을 맞추고 뺨을 만지고 성기를 비벼도 그럴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남들은 그것을 추행이라 부르고 신고함을 알았을 때는 나의 바보 같음을 탓했다.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그랬을까, 그때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왜 곧바로 그것이 범죄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또 알고 나서는 신고할 용기가 없었을까. 그 후에는 또 다른 자책이 들었다. 삽입을 포함한 강간이 이...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49
팔로워 15
팔로잉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