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철학자의 추상적인 기분

뉴필로소퍼
뉴필로소퍼 인증된 계정 · 일상을 철학하다
2022/09/01

항상 신중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져본 뒤에야 행동하는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도덕철학자의 삶이 무척이나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쉬고 있을 때조차 윤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매 순간 복잡한 사고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멈추어, 그것이 신중하게 세운 윤리 원칙에 반하지는 않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지치지 않는가.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물에 빠진 아내와 낯선 사람 중에서 아내를 구하기로 선택한 사람을 사례로 든다. 도덕 이론은 우리가 공평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내를 구하기로 한 선택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하나라도 떠올려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일 뿐이지만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뉴필로소퍼> 14호, 일러스트: 아이다 노보아&카를로스 이건

이 문제를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 가끔 행위는 생각 없이 이루어질수록 도덕적으로 더 칭찬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불이 난 건물 앞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곰곰이 따지느라 꾸물거리는 사람보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로 뛰어든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칭찬받을 만한지는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분별없는 행동이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도덕적 행동을 할 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다. 이때는 추상적 사고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해야 하는 일을 ‘이해’하는 데 쓴다. (이는 실행으로 옮기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고 돕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춘다. 우리는 누군가의 지갑이 소리 없이 떨어졌을 때, 곧장 알려준다. 신중히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말이다.


우리는 도덕에 쉽게 압도된다

옳고 그름은
세계 자체의 특성이 아닌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출처: <뉴필로소퍼> 14호, 일러스트: 아이다 노보아&카를로스 이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이론적 원칙을 적용하고 반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상황의 특성을 지각한다는 주장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관점은 도덕적 지각주의라고 불린다. 도덕적 지각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는 많다. 최근 철학자 프레스턴 J. 워너는 적어도 세 가지 이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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