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슬] 농담이 된 삶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3/03/13
농담이 된 삶


 몇 주 전, 서울역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입구를 찾아 헤매다가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밟고 밑으로 내려갔다. 짧은 경사로 위에서 가속도를 받은 몸은 재빠르게 어딘가로 떨어져 버렸는데, 거기에는 노숙인들이 모여 있었다. 당황해서 아까 하강하던 몸만큼이나 재빠르게 사과를 하고 자리를 벗어나는 내 등 뒤로 '아가씨 큰일 날 뻔했어! 내리막에선 조심해야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등지고 나는 뒤돌아 다시 계단을 올랐다. 

 노숙인으로 사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거처가 없었고, 돈이 없었다. 화장실과 정수기가 있는 마트를 헤매다 피곤해 의자에서 잠이 들면 보안요원이 다가와 정중하게 나를 쫓았다. 작아도 불안정해도 좋으니 당분간이라도 묵을 수 있는 방이 간절했다. 다만 내 형편 안에서 그런 공간을 찾는 일이 너무도 힘겨웠다. 평일 낮을 대형마트의 휴게실과 화장실 주변에서 활동하다 보면, 노숙인들 혹은 설핏 보아도 '고객'이 아닌 이들과 동선이 겹치곤 했다.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계속 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일일까. 저들은 지금 어떤 기분이고, 어젯밤은 어떻게 버텼으며, 오늘은 어디서 잘 예정인 걸까. 어떤 노숙인들은 이유 없이 계속 웃으며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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