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치 못한 가짜 가죽과 신발의 지옥 2-표면 잃은 등산화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3/27


진짜 가죽 제품은 있는 걸 잘 쓰거나 중고로만 쓰고 합성 피혁 제품은 최대한 피하고 있는 터라 한동안 합피에 대해 분노할 일은 없었는데, 근래에 괜한 소비를 하면서 충격받고 말았다. 이번에도 등산화가 문제였다.

등산을 취미로 갖게 된 이후로 이 장비 저 장비 다 써보다가 이제 등산 얘기를 다뤄볼까 고민하게 된 내게 꼭 확인할 물건이 있었으니, 바로 컬럼비아의 등산화, 뉴튼릿지 시리즈였다. 등산을 해보려는 사람이 등산화를 검색했다가 가격에 충격받고 최종적으로 고를 확률이 대단히 높은 신발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인기 있는 산에 가면 이 등산화를 제법 자주 보게 된다. 어지간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미드컷 등산화의 반값인데다 심지어 디자인은 훨씬 매력적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값싸고 예쁘다니,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희생했단 말인가? 착화감이 나쁜가? 주변 친구들도 이 등산화를 세 명이나 산 터라 궁금증을 해소하는게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중고 장터를 주시하다 상당히 싼 값에 뉴튼릿지 시리즈의 구형 모델을 구할 수 있었다. 표면이 좀 갈라겼지만 진짜 가죽이라 적혀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믿고서.

그러나 이 신발을 받아서 좀 살펴보자마자 내 정보가 아주 틀렸음을 깨닫고 말았다. 스웨이드 가죽으로 만들어진 최신 모델과 달리, 내가 산 모델은 가죽인데 겉에 우레탄 코팅을 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스플릿 가죽, 상가죽이라 부르는 이 가죽은 통가죽이라 부르는 제뉴인 레더보다 더 안쪽의 연한 가죽을 코팅해서 만든 것으로, 표면이 매끈한 가죽 운동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쯤 합성피혁인 셈이다(한국 법령상 코팅 두께가 0.15mm를 넘어가면 천연 가죽이라 할 수 없다). 중고 매물 사진에서 본 갈라진 틈은 바로 이 코팅이 갈라진 자국이었다. 이 신발도 내구연한이 지나서 우레탄이 벗겨지는 와중이었던 것이다.

아차 싶었으나 판매자가 속인 것도 아니고, 어째서인지 컬럼비아 뉴튼릿지는 이상할 정도로 매물이 없는...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135
팔로워 2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