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퀴어談] 페미로부터 레즈를 자유케하라
2024/09/05
초저녁 인천 독립영화관에서 <문경>을 보고 나와 근처 바지락가득국수를 먹고 하루를 평온하게 마무리할 무렵, 오늘도 한 건을 하고 말았다.
한달 전 밴드를 만들고 퀴어소설을 쓰는 등 벽장을 깨며 가입한 레즈비언상담소, 후원 조건으로 정회원이 되고, 정회원으로 활동하려면 신입회원OT를 받아야 한대서 진즉에 완료. 서너 시간 가까이 9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한국레즈비언 단체와 인권운동의 역사를 듣고, 폭력금지 등 가입서약을 하며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가 동아리방에서 선배에게 교육받는 듯한 추억에 잠겼다. 물론 그 동아리는 먹고놀자 여염집 모임이 아니라 사상, 운동이란 뒷말이 어울리는 그런 류의 모임. 다들 I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 서먹한 요즘 애들 틈에 끼어 '팸투팸이신가봐요.'란 농담을 건넸다가 개정색을 하며 불쾌하다고 말한 20대(추정) 신입회원으로 나야말로 초면에 개-불쾌했다. 단체가 정한 '성향백과사전'이라도 있는 건지, 왜 팸/부치를 나누냐는 식인 건지, 뉘앙스조차 알 수 없는 그냥 불쾌함을 당했다.
애초 몰랐던 단체가 아니다. 90년대 중반 소위 '레즈대학'이라고 불리던 캠퍼스에서 접한 여성단체인지 인권단체인지에서 봤던 곳이다. 당시 단체장이던 레즈비언 역시 신촌오거리의 레즈비언 술집, 레스보스에 서너 차례 놀러가며 대면한 적도 있다. 여자교도소, 미혼모, 고아원 등 여성과 아동 관련 봉사를 10대부터 하며 사회의 구석진 풍경이 낯설지 않은 나였지만, 당시 사귀던 애인과 칵테일 한잔 후 신촌 뒷골목에서 목격한 레즈비언들(주로 부치들)이 500미리 갈색맥주병을 깨며 서로 목을 겨누던 광경을 한번 보고는 다시 가지 않았다. 폭력에는 분노가 응당 따르지만 그렇다고 같은 폭력을 구사하는 그들, 하필이면 나와 레즈 장르를 공유한다는게 부끄러웠다. 아카데미아의 세계도 다르지 않았다. 가끔 이모의 연구실, 여성학 교수실에 들르면 듣게 되는 조교 간의 정치적 연애, 키스와 섹스 등의 뒷담화는 '어쩔 수 없이' 이 사랑을 꽁꽁 숨어 하는 레즈비언으로 듣기 대단히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