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매일 가위눌려"

하성태
하성태 인증된 계정 · 자유로운 pro 글쟁이
2023/08/22
▲ 4.3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아트하우스 모모 상영회. ⓒ 하성태
"1948년도 4.3이 일어나고 나서 50년도에 육지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거의 한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이 이루루어졌는데, 그러한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4.3으로 인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 전주형무소에서 3년, 이렇게 5년을 살고 해방을 맞이해서 정말 희망찬 꿈을 꾸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애를 먹이던 일본인 순사가 해방 이후 과장이 됐어요. 보도연맹 얘기 들어 보셨죠? 저희 동네가 송이산 부근에서 한꺼번에 죽었고, 우리 아버지도 (보도연맹 같은 예비검속의) 희생자입니다."
 
본인을 1946년생이자 광복회 회원이라 소개한 나이 지긋한 청중이 만4살 때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도 제주4.3과 관련해 "발이 닳도록 많이 쫓아다니고 있다”는 그는 제주4.3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4.3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회 자리에서다. 이 기구한 사연을 지닌 청중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아버지 없이 삼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남편의 시체를 찾고 또 찾았고, 78살에 돌아가실 때까지 가위에 눌리고 또 눌렸다고 했다. 그에게 제주4.3과 아버지 사건은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일 터.
 
"가해자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라든지 대전 현충원이라든지 제일 좋은 자리에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 현 주소입니다. 과연 이걸 두고 우리가 역사의 좋은 내용을 논하기 전에 가해자들을 지금 찾아내야 하는 사안이고, 가해자들을 제대로 조명해서 우리 역사의 기록과 교과서에 기록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저는 한 발자국도 못나갔다고 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지금 모셔져 있는데, 묘역을 보실 때 모습을 보니 (아버지) 머리의 3분의 2가 날아가고 깨지고 그랬어요. 무릎을 꿇게 해놓고 뒤에서 총을 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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