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을 떠난 전공의선생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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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oazim 인증된 계정 · 아줌마, 의사, 연구자
2024/04/01
2024.2.22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병동을 떠나 몸은 편해지셨겠지만 마음은 불편하고 상처받은채로 지내고 있겠지요. 눈만 뜨면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바깥에 나가기도 두려울 지도 모릅니다. 병동에 두고 온 환자들도 생각이 날 거구요. 그분들은 저희가 잘 보고 있으니 너무 염려마세요. 
방금 말기암 환자의 사망선고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시신을 정리하며 환자에게 박힌 각종 관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노안이 와서 tagging suture가 잘 보이지 않아 제거하기가 힘든 웃픈 일이 있었습니다. 잘못해서 시신에 상처를 내면 안되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데, 매듭이 잘 보이지 않으니 블레이드를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지난 2020년 파업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장갑을 끼기 전에 안경을 벗었어야 했는데. 다초점렌즈를 맞췄는데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입원환자는 많이 줄였습니다. 입원시키면 내가 봐야 하니 할 수 있는 만큼만 입원시킬 수밖에 없죠. 한편으로는 그동안 불필요한 입원도 참 많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외래에서도 가능한 고가의 항암제를 맞으면서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한 입원, 호스피스로 가야 하는데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의 입원, 외래에서도 가능한 검사를 환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했던 입원. 저는 입원진료가 젊음을 갈아넣는 도가니탕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에는 곧잘 했던 퐁당퐁당퐁퐁당 (주 3회 당직)을 30대만 되어도 월 1-2회도 힘들어서 잘 못합니다. 밤샘 교대근무는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기도 하죠. 
젊은 전공의, 간호사들을 갈아넣어 유지되는 입원진료라는 귀한 자원은 아껴서 써야 했음에도 우리사회는 그것을 남용하였습니다. 교수들은 환자와의 실랑이가 귀찮고 환자들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마음씨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입원장을 손쉽게 남발하였습니다. 환자들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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