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필요할 때] 우리처럼, 안나도 책을 읽으며 딴짓을 한다
2022/06/27
[문학 속 한 장면]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안나는 책을 읽었고 이해도 했지만 읽는다는 것이 불쾌했다”
[…] 다른 두 부인은 안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뚱뚱한 노부인은 다리를 감싸면서 난로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안나는 서너 마디 부인들의 말에 대꾸를 했으나 얘기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 안누쉬카에게 독서등을 꺼내도록 부탁하여 그것을 좌석의 팔걸이에 걸고 손주머니 속에서 페이퍼나이프와 영국 소설책을 꺼냈다. 그러나 처음 얼마 동안은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주위의 혼잡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방해를 했으며, 이윽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왼쪽의 창문을 두드리며 창틀에 쌓여가는 눈송이, 방한구에 싸인 몸뚱이의 한쪽에 눈이 덮인 채 옆을 지나가는 차장의 모습, 지금 밖엔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이러한 것들이 그녀의 주의를 산만하게 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줄곧 똑같은 것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기차의 진동, 한결같이 창문에 내리치는 눈, 식었다 뜨거워졌다 하는 증기열의 급격한 변동, 어두컴컴한 속에서 어른거리는 똑같은 얼굴들, 그리고 똑같은 목소리들. 그래서 안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은 것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책을 읽었고 이해도 했지만 읽는다는 것, 즉 책에 씌어진 타인의 생활을 뒤따라간다는 것이 불쾌했다. 그녀는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소설의 여주인공이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 부분을 읽을 때는 자기도 키발을 하고 병실 안을 걷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고, 국회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는 부분을 읽을 때면 자기도 연설을 하고 싶어졌다. 또 레이디 메리가 말을 타고 짐승의 떼를 쫓거나 며느리를 빈정거리기도 하면서 그 대담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대목을 읽을 때면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조그마한 손으로 반들반들한 페이퍼나이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책을 읽으려고 애썼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1권), 문학동네, 200-201쪽.
교수, 평론가, 시인, 라디오 DJ, 작가, 전문 연구원, 기자, 에세이스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아홉시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