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1
걸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걷기 좋은 도시는 건강에도 좋지만 차를 타고는 볼 수 없었던 지점을 보여준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내린 눈에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달려 나와 정신없이 길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것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 볼 수 있는 풍경이었겠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동 약자들에게 눈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다가오진 않고요.
보조기구를 밀며 조심스레 걷는 노인을 위해 가시는 길 앞으로 달려가 눈을 치웁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눈길을 쓰는 사람을 향해 가시는 분이 인사를 건네자 눈을 쓸던 사람은 얼른 가시라고 재촉한 후 다시 비질을 합니다. 외투를 입은 분들은 소속이 적혀 있었지만 티셔츠 하나만 입고 나와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쓰는 분들은 소속을 알 수도 없었죠. 인근 책방에 들러 주문한 책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눈을 쓸고 있었습니다.
사직단만 관리하면 되는 직원들이 전철 출입구까지 나와 비질을 합니다. 옷도 걸치지 않고 눈을 치우던 사람들은 사직동 주민센터 직원들이었어요. 아이들 등교를 마친 양육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눈을 함께 치우고 있었습니다. 좁은 길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라 카메라 어플은 켤 생각도 못했어요. 필사적으로 눈을 치우는 길은 골목의 유일한 인도였습니다. 초중고대학교가 몰려있는 곳이고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작고 낮은 집과 다세대빌라가 무수히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근처에 신고가를 경신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수두룩한데도 길만 건너면 낡...
북아현동은 이제 빈부격차만큼이나 편의성도 나뉜 동네가 되었어요. 뉴타운 지구에는 수천세대의 아파트 단지, 문화센터, 반듯하게 정리된 도로, 안전한 인도, 아스팔트 밑의 열선과 교통약자를 위한 에스컬레이터까지 만들어졌는데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구는 곧 사라질 동네라 관련 인프라 확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임에도 보수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작고 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뉴타운에서 제외된 경기대 쪽은 그나마 낫고요.
밧줄을 잡고 이동하는 것도 잡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씀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준비하고 계신 글도 기다리겠습니다. 의미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데로 이동권과 함께 주거권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30년 전 쯤 북아현동 산동네에서 자취하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 평소에도 다니기 쉽지 않던 길인데 눈이 와 쌓이면 젊은 저로서도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았지요. 주변에 사는 분들이 연탄재를 부수어 눈길에 뿌려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 길 가 전신주에 밧줄을 묶어놓은 게 기억이 납니다. 누가 그걸 묶었는지 몰라도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리면서 이 밧줄을 잡을 수 없는 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거권과 이동권은 사실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준비하고 있는 글이 있습니다.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데로 이동권과 함께 주거권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30년 전 쯤 북아현동 산동네에서 자취하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 평소에도 다니기 쉽지 않던 길인데 눈이 와 쌓이면 젊은 저로서도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았지요. 주변에 사는 분들이 연탄재를 부수어 눈길에 뿌려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 길 가 전신주에 밧줄을 묶어놓은 게 기억이 납니다. 누가 그걸 묶었는지 몰라도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리면서 이 밧줄을 잡을 수 없는 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거권과 이동권은 사실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준비하고 있는 글이 있습니다.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