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길을 걷는데 제설차가 지나가다
2022/12/21
새벽 5시에 출근길에 나서는데 함박눈이 내리더군요. 어쩔까 잠깐 고민하다 그냥 후드를 쓰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잠든 틈에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있더군요.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눈을 걷습니다.
어느덧 길은 도로로 이어지고 인도를 따라 다시 조심스레 걷는데 뒤에서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제설차가 다가서더니 스쳐지나 가더군요. 도로를 보니 이미 까만 아스팔트가 다 드러나 있습니다.
어제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주최한 녹색일자리 자전거 부문 연구포럼 다녀온 기억이 떠오릅니다. 북유럽의 어느 나라에선 눈이 쌓이면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먼저 제설하고 도로는 그 다음이라고 하더군요. 원래 다른 나라처럼 도로를 먼저 제설했는데 문제제기가 있었다고요. 통계를 보니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이들은 남성이 많고, 걷거나 자전거로 나가는 이는 여성이 많은데 도로부터 치우는 건 불평등한 일이라는 거였다더군요. 어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다른 이야기와 생각거리에 묻혀 넘어갔지요.
오늘 새벽 눈길을 걸으며 다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중교통 분담률을 생각하면 도보와 자전거가 승용차나 버스 지하철보다 많이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통계를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당연하게 ‘직장에 가는 일’의 중요함을 생각하면 도로를 먼저 치우는 게 당연하다는 반론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자연히 생각은 이동권의 문제로 옮겨갑니다.
과연 직장에 가는 이동보다 다른 이동은 덜 중요할까?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걷습니다. (우리 동네 한정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눈이 오면 부모가 차로 태워줄만도 합니다만 차로 직장에 출근한 다음 일이니 차가 한 대 더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우리나라 소득 상위 30% 정도에 한정된 일입니다. 그리고 중학교도 도보와 자전거가 등교의 대부분이지요. 어린이집에 연신 미끄러지는...
예산이죠. 이런데다가 예산을 써야겠어? 가 아니고 이런데다 예산도 쓰고 일자리도 늘린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군요. 일자리 없는 사람에게는 눈치우는 것도 돈주고 시키면 그것도 근로가 되어서 좋습니다. 정부가 좀 그런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수해가 일어나는 시기가 되면 눈이 오는 시기가 걱정이고 눈이 오는 시기면 수해가 걱정되죠. 근데 걱정은 서민만 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