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0
※ ZDNET 코리아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입니다.
중세를 흔히 암흑의 터널이라고 이야기한다. 암흑의 터널이라는 표현은 아마 인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입장을 인간에서 신(또는 신을 대리한 인간?)으로 바꾸어 본다면 중세는 오히려 가장 빛나는 시대였을지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중세를 관장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신의 피조물일 뿐이며, 인간은 그 존재 이유를 자신이 아닌 신에게서 찾았다. 중세의 음악과 미술, 그리고 건축은 각각 신을 찬양하기 위해,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그리고 신을 머무르게하기 위해 시작되었고, 각각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예술의 관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를 우리는 르네상스라 부른다.
중세의 생산관계는 동양과 서양 모두 농경이었지만, 그 생산물을 분배하는 지배 질서는 동양과 서양이 다소 달랐다. 중세의 동양이 다분히 중앙집권적 지배 질서를 추구했다면, 중세의 서양은 크고 작은 성(城)을 가진 왕이나 영주들이 중앙의 국왕과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이른바 지방분권의 시대였다.
작은 나라에 후계자가 될 왕자가 많은 경우 문제가 생긴다. 영토를 분할하여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한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만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웃 나라 외동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처가의 왕국을 물려받아 공동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자들은 공주가 한눈에 반할 수 있도록 현란한 말솜씨와 에티켓, 기사도를 몸에 배도록 수련해야 했다(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중에서).
영주의 착취가 아무리 심해도 피지배계급에게 성 안은 성 밖보다 훨씬 더 안전한 공간이었다. 인류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이자 저주는 바로 적응능력이다. 인류의 직접 조상인 사피엔스는 환경에 적응하고...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사회 현상의 본질을 넘어 그 이면에 주목하고 싶은 兩是論者.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ZDNET 코리아에 칼럼 "IT는 포스트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연재.
공주대학교 평생교육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