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박리 수술 체험기] 의사에게 눈이 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24/01/12
20년 전, 대학생 무렵 봤던 작법서 중 한 권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강도가 총을 들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말에 “나는 작가예요! 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저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된 후로 나는 정말 이런 상황을 마주치고 말았다.
2023년 1월 8일 밤부터 9일 새벽의 일이다. 그날도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새벽 네 시까지 안 자고 갖은 독서를 하고 있었다. 이 날따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2막이 땡겼다. 기어코 두 권을 연달아 해치우고는, 미야베 미유키의 SF단편선을 읽으려고 손에 들었다. 그런데 눈이 뭔가 이상했다. 왼쪽 눈 아래쪽, 정확히 말하자면 안경코가 있는 부근에 검은 선이 생긴 거다.
... ...?
순간 좀 피곤한가 했다. 12월 말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코엑스 메가박스까지 가서 <라비앵 로즈>를 보고 온 날이었다. 그 날은 너무 눈이 가렵고 피곤해서 심하게 비볐더니 다음 날 평소보다 훨씬 비문증이 심해졌다. 왼쪽눈에 날파리가 아니라 날파리 떼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래서 일단 쉬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지겠지, 하고.
다음 날, 엄청난 늦잠을 잤다. 무려 오후 한 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보통 이 정도로 자고 나면 평소라면 눈이 말짱해진다. 그런데 이 날은 변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기 전엔 검은 선에 불과했던 것이 조금 더 커져 이제는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설마 뭐 나에게 문제가 생기겠어? 라는 기분이 들었기에 일단 평소처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건 내 고질병인데, 이상하게 집에서는 글이 안 써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설만’ 안 써진다. 다른 건 다 써진다. 칼럼, 시나리오, 잡글 등등 다 되는데 왜 소설만 안 되는 건지 당췌 이유를 알 수 없다. 오늘은 또 어느 카페를 갈까 고민하다가 마침 오는 버스를 무턱대고 탔다. 그러고는 또 무턱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