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트로 ⑪> 30년 만에 드러난 오보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1/13
때는 1983년 여름. 한창 진행 중이던 지하철 4호선 건설공사가 동대문 석축에 균열을 가져오느냐 안 가져오느냐의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시공회사와 일부 학자들은 괜찮다고 했고, 대부분의 언론과 또 다른 학자들은 동대문 밑에서 함부로 그렇게 발파 공사를 하다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대문이 균열로 무너질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논쟁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균열이 발생하는지 여부 파악을 서울 모 대학 토목학 교수에게 의뢰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장을 취재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은 한 어린 기자가 동대문 석축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석축 여기저기에 하얀 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어린 기자는 수첩에 몇 줄 메모를 갈겨 쓴 후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 “지하철 공사장 진동으로 인한 동대문 균열 여부를 고작 흰색 석고를 붙여서 파악하려는 당국과 전문가들의 한심함과 무책임”을 준열히 꾸짖는 기사를 써 데스크에 넘겼다. 데스크가 경쟁사 기자들이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이 기자는 씩씩한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기사는 다음날 사회면에 크게 보도됐으며, 어린 기자는 ‘현장 취재에서 뽑아낸 단독 기사’에 스스로 흡족해 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2012년 어느 날. 신문사를 그만두고 건설 관련 단체의 홍보담당 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던 이 어린 기자는 토목을 전공하고 수십 년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다른 임원에게서 “건축물의 균열을 파악하는 데는 석고를 발라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며 아직도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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